'지지부진'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반도체·휴대폰 승승장구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 윤 부회장 직할 체제로 개편

맘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는 삼성전자가 유독 생활가전 사업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직할체제로 옷을 갈아 입은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 부문이 2007년에는 회생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에서는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삼성전자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 전자레인지 등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 분야에서만은 수 년째 힘을 못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초 대규모의 승진 및 포상 인사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생활가전 사업 부문은 거명조차 되지 않았다. 적자를 면치 못해 온 생활가전은 총괄 책임자가 해외발령을 받은 후 후임 사장조차 임명되지 않는 처연한 신세에 처한 것이다. 생활가전 부문은 총괄조직으로서 존치 여부조차 검토 대상이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어 행해진 조직개편 및 임원 보직 발령인사를 통해 삼성전자는 생활가전총괄을 사업부로 축소했다. 그리고 최진균 부사장이 사업부장을 맡아 생활가전 사업부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자연히 생활가전 사업부는 사장 없이 직속 조직으로 편입됐다.

이쯤 되면 ‘삼성전자의 생활 가전은 왜 부진한가’, ‘삼성전자, 반도체와 휴대폰에 열중하느라 생활가전은 포기했나’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과연 이번에는 적자행진에서 탈출할까. 업계에서는 전망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휴대폰 시장에서 거둔 ‘신화’에 골몰해 있는 사이 생활가전 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와 휴대폰이 쌓아 올린 ‘성공의 산’이 높은 만큼 생활가전 분야에 대한 관심은 ‘깊은 계곡에 묻힌 채’ 뒷전으로 처져온 것이 사실. 일각에선 “못해도 그만”, “잘해봤자 큰 돈이 안 되는 분야”라고 냉대하기까지 했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윤종용 부회장
삼성전자 생활가전 분야의 사업 성적표는 한마디로 초라하다. 2003년부터 내리 수년간 적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애물단지’이다. 반도체나 휴대폰, LCD 사업부는 승승장구하는데 생활가전은 저조한 실적으로 아예 일반의 관심권에서조차 사라진 지도 오래일 정도다.

때문에 최근 조직개편에서 총괄 체제에서 사업부로 전락한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부문은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사장급 사업부로 격하된 만큼 생활가전 부문의 임원 수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돈이 안 되는 분야이므로 일반 직원들도 큰 이동은 없더라도 자연 감소분 등으로 전체 인원이 축소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한다. 실제 2004년부터 운영됐던 삼성전자 생활가전 수원사업장 내 여러 프로젝트팀들이 최근 해체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연구원들은 이직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생활가전 부문에서 일련의 구조조정 분위기는 적자 탈피를 위해서 결국 돈 안 되는 부문은 정리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과감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또 지난해 미국 시카고에 R&D연구소가 개설돼 현지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R&D조직 통합도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의 부진과 축소는 공교롭게도 LG전자 생활가전 부문이 거두고 있는 성공가도와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LG전자는 해마다 고수익을 올리는 성장을 거듭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2년 글로벌 시장에서 58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LG전자는 이듬해 70억 달러, 2004년에는 85억 달러, 2005년에는 96억 달러 등 해마다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0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 100억 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지난해 LG전자의 생활가전 부문 매출은 전 세계에서 월풀(196억 달러)과 일렉트로룩스(140억 달러)에 이어 3위다. 생활가전 해외시장에서만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삼성전자가 거둔 20억 달러의 3배가 되는 금액이다. LG전자 전체 매출 규모에서도 생활가전이 28% 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삼성전자 생활가전 부문은 2002년 1,280억원의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고 만년 적자다. 지난해에도 3조900억원 매출에 1,7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한 해 매출 40조원 중 20조원 이상을 반도체에서만 거둬 들이는 수익 구조상 상대적으로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금액에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만한 수치가 아니다. 누적 적자만 해도 수천억원 단위로 올라섰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누적적자 1조원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LG전자 생활가전의 성공은 첨단기술이 적용된 고급 프리미엄 전략이 주효한 때문이다. 실제 LG전자는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세탁기 ‘트롬’ 등 다른 제품들에 비해 비싸게 내놓은 제품들이 잘 팔리고 있다. 디자인 및 사용자 편의성이 강조된 고품격 가전제품 개발 사례로는 액자형 ‘아트쿨’ 에어컨과, 3-Door 냉장고가 꼽힌다. 양문형 냉장고나 대용량 드럼세탁기, 광파오븐도 마찬가지.

LG전자는 현재 1위 제품인 에어컨, 전자레인지(MWO), 청소기(Canister형)에 이어 드럼세탁기(트롬), 양문형 냉장고 (디오스) , 시스템 에어컨 등에서도 세계 1위 제품군 등록을 앞두고 있다.

LG전자 김형종 홍보과장은 “생활가전 사업의 수익률이 2~3%로 낮은 저부가가치 상품이란 얘기는 장사가 안 되는 기업에 국한된 얘기”라며 “LG전자 경우는 생활가전에서만 10% 내외의 수익을 올리는 고부가가치 사업이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가 유독 생활가전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례로 시장에서 삼성전자 생활가전은 대중적인 중저가 제품들이 아직까지는 주류를 이룬다는 평가다. 이는 결국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또 다시 수익률 저하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때문에 시장 규모나 수익에 걸맞지 않게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들여 판촉에 나서는 것 또한 적자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먼저 앞서 개발, 출시해 내는 연구 개발 능력도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생활 속으로 파고 드는 글로벌 전략이 LG전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LG전자가 ‘감성’ 경영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이성’에 치중하는 기업 풍토란 점도 생활가전의 명암이 갈린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반도체나 휴대폰 등 첨단 기능 개발이 생명력인 신기술 분야에서는 ‘이성’의 삼성이 우세하지만 생활 속에서 느낌이 중시되는 가전 제품에서만은 ‘감성’의 LG가 뛰어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가전 분야에서는 사실상 나올 만한 기술은 거의 다 나와 있고 기술 수준도 평준화돼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을 실생활에 잘 응용하느냐에 우열이 판가름난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 가전 부문의 부진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와 통신에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전이 처지고 있는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즉 가전 부문이 수익률이 낮으니 우선 반도체와 통신에서 고수익을 거두는데 우선권을 둔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고 한다.

저가 제품으로 무장한 중국까지 가전 시장에 전력투구하는 마당에 굳이 가전에 ‘올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 광주 공장과 기존 R&D센터 등의 본부가 서로 다른 법인 체제로 운영되는 것도 경쟁력 약화의 한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가전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LG전자의 경우를 보면 이는 설득력이 약하게 들린다.

윤 부회장 직할 체제에 들어간 삼성전자 생활가전 부문이 그동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올해 새롭게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부정적 요인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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