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주파수 이용한 대상 식별 기술… 효용가치 무궁무진한 '차세대 바코드'

산업과 생활 전반에 걸쳐 일대 혁명을 가져올 이른바 무선인식(RFIDㆍ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시스템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 7,000여 개의 매장을 가진 지구촌 유통공룡 월마트는 RFID 혁명의 선두주자다. 2005년 10월 500여 개 매장과 140여 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RFID 시스템을 처음 적용한 월마트는 불과 두어 달 만에 그 효과를 입증해 관심을 모았다.

미국 아칸소대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는 주문에서 진열까지의 제품 흐름이 3배나 빨라진 데다 재고 품절도 16%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는 경쟁업체보다 훨씬 빨리 제품을 조달할 뿐 아니라 적시에 재고를 채움으로써 판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의미다. 월마트는 RFID 시스템을 곧 600여 개 업체로 확대할 것으로 전해졌다.

세연테크놀로지의 RFID 리더기
국제 배송물류업체 DHL은 지난해부터 IBM, 인텔 등 세계 유수의 정보기술 업체 4개사와 공동으로 RFI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계획은 제품운송 과정 등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DHL 배송망에 RFID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장거리를 이동하는 제품의 배송 과정과 운송 수단을 회사에서는 언제든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DHL은 제품 배송 과정의 투명성이 크게 개선되고 배송 물자의 관리 절차도 대폭 간소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량의 품목정보 한꺼번에 파악

RFID는 무선 주파수(RFㆍRadio Frequency)를 이용해 어떤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안테나와 칩으로 구성된 전자태그에 사용 목적에 맞는 정보를 저장하고 적용 대상에 부착한 다음, 리더기(판독기)를 통해 그 정보를 인식하는 원리다. 제품의 정보를 스캐너(판독기)로 읽어 들이는 기존 바코드 시스템과 유사해 ‘차세대 바코드’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RFID 시스템 구상도
하지만 그 효용은 바코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우선 저장 정보량의 경우 바코드는 고작 수십 단어에 불과하지만 RFID 전자태그는 수천 단어에 달한다. 또한 바코드는 스캐너를 바짝 붙여야 저장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반면 RFID는 무선인식 시스템인 까닭에 수십m 이상 떨어진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판독해낸다.

정보를 읽는 속도 역시 RFID가 월등히 뛰어나다. 바코드 시스템에서는 스캐너가 한 개의 품목마다 각각 스캐닝을 해야 하지만 RFID 시스템에서는 무선 주파수를 통해 수백 개에 이르는 대량의 품목 정보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다. RFID가 물류, 유통 혁명의 총아로 대접을 받는 것은 바로 그런 장점 때문이다.

RFID 기술은 사실 꽤 오래 전에 착안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이 자국 전투기를 식별하기 위해 처음 개발한 뒤 1960년대부터는 서구 각국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실용화를 위한 연구도 적잖이 진행됐다.

하지만 고비용 때문에 시스템 구축의 수지타산이 안 맞아 거의 빛을 보지 못하다가 90년대 이후 실용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국제표준화기구(ISO)도 전 세계적인 RFID 시대를 열기 위해 표준 제정 작업을 펼쳤다. 이런 과정을 통해 RFID는 2000년대 들어서야 미래를 열어갈 신기술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RFID 혁명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 수년간 정부 주도로 압축적인 RFID 발전 전략을 펼쳐 왔다. 여기에는 한국의 미래 신성장동력을 확충한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추진된 정보통신부의 이른바 ‘IT839 전략’도 한몫했다. 산업자원부 역시 RFID가 물류, 유통산업에 지대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민관 공동으로 시범 사업 등을 펼치며 산업기반 조성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 RFID 실용화 시대의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올해가 국내 RFID 혁명이 본격화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물론 지금껏 RFID 산업이 정부 주도로 육성됐기 때문에 아직 상대적으로 민간 부문의 자생적 시장 형성이 더디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 RFID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RFID 장비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민들이 쉽게 체감할 만한 RFID 서비스 시장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물류, 유통, 제조업 분야 등 산업현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상당한 진척이 있었으며 생산성 향상에도 적잖은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RFID 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우선 공공 부문의 야심찬 청사진이 눈에 띈다. 정보통신부가 2월 중순 밝힌 2007년 업무계획에는 범정부 차원의 RFID 실용화 사업들이 몇 가지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농림부와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u-농업’ 사업. 이 사업은 축산농가 피해는 물론 국민들의 건강식단도 위협하는 구제역, 조류독감 등 가축질병에 대해 RFID 기술 등을 토대로 조기 발견 및 대응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국방부와 함께 구상한 전방부대의 ‘무인감시 체계’ 도입도 눈길을 끈다. 이는 RFID 및 USN(Ubiquitous Sensor Networkㆍ각종 센서에서 수집한 정보를 무선으로 수집할 수 있도록 구성한 네트워크) 기반의 첨단 경계 방식으로 장병들의 근무 부담 완화 등 전력 운용 효율화에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환경부도 감염성 폐기물 등 유해 폐기물 관리 기반을 새로 구축하는 데 RFID를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RFID 기반구축 사업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측되는 것은 조달 분야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RFID 시스템 전면 도입이다. 이는 정부에 물자를 공급하는 민간 업체들로 하여금 RFID 전자태그 부착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조달청이 조심스레 검토 중인 이 제도가 만약 계획대로 실시된다면 정부의 구매력을 감안했을 때 막대한 규모의 RFID 관련시장이 단숨에 형성되는 부대효과가 기대된다.

SKT '터치-북스토어' 서비스 첫 상용화

민간 부문에서도 RFID 혁명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RFID의 쓰임새가 원체 많은 까닭에 업계에서는 시장에서 통할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찾는 데 골몰해 있다.

그중에서도 SK텔레콤(SKT), KTF 등 이동통신 업체들이 추진 중인 모바일 RFID 서비스가 우선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이 RFID 혁명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지난해 정보통신부와 손잡고 선보인 시범 서비스의 핵심은 휴대폰 단말기에 장착된 리더기를 통해 전자태그를 읽어 각종 제품 정보를 구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KT는 시범 서비스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1월부터 대형서점에서 휴대폰을 통해 도서정보를 훑어볼 수 있는 ‘터치-북스토어’ 서비스를 처음 상용화했다. 현재 교보문고 서울 매장 3곳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 SKT 홍보실 관계자는 “앞으로 실생활과 밀접한 상품 또는 매장을 대상으로 모바일 RFID 서비스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FID 시스템을 시정에 적극 도입하며 이른바 ‘u-시티’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부터 교통체증 및 대기오염 개선을 위해 승용차 요일제를 도입했다. 여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동차세 5% 감면 등의 혜택을 시로부터 받는다.

주목할 것은 이 제도의 운영 기반이 RFID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즉 승용차 요일제 참여를 신청한 시민의 자동차에 전자태그를 부착해 시내 곳곳에 배치된 리더기를 통해 요일제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서울시는 택시 이용객들이 휴대폰을 통해 자신이 탈 택시의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택시 안심 서비스’도 개발했는데 이 역시 RFID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은평뉴타운 개발을 ‘u-시티’ 건설의 시범 사업으로 삼았다. 뉴타운 주요 지점에 RFID 및 USN 시스템, CCTV 카메라 등을 설치해 각종 생활정보 등을 수집, 관리함으로써 시민 편익을 증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쯤 되면 서울시민은 이제 RFID 혁명의 한가운데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RFID/USN협회에 따르면 국내 RFID/USN시장의 총 매출액은 2005년부터 연 평균 100% 이상 급증해 올해는 총 6,540억원(RFID 부문만 따지면 4,700여 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RFID/USN 관련 기업 숫자도 최근 3년 사이 5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 확대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말이다.

국내기업 기술력 확보 서둘러야

하지만 ‘외화내빈’이라는 지적도 만만찮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우선 제한적인 초창기 시장에 진출기업 숫자가 늘어나면서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단위 프로젝트당 사업 규모도 작아 대다수 업체들이 영세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열세인 기술력도 문제다. 한국RFID/USN협회는 국내 기업들의 RFID 관련 하드웨어(반도체 칩, 리더기, 태그 등) 기술 수준이 선진 기업에 비해 1~3년 가량 뒤져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IT 강국답게 시스템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은 선진 기업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SKT의 모바일 RFID 서비스에 리더기를 공급한 리더기 전문업체 세연테크놀로지의 관계자는 “대부분을 수입하는 태그 분야를 빼고는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면서도 “아직까지는 국내 RFID 실용화가 외국산 장비에 적잖이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최근 해외의 거대 IT업체들이 한국의 RFID 시장의 성장성을 내다보고 속속 상륙하고 있다. 토종 기업들과 외국 기업들의 RFID 쟁탈전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자칫하면 안방을 내줄 공산도 없지 않아 보인다. RFID 시장의 형성 못지않게 이를 주도할 수 있는 기술력 확보를 하루 빨리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