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대출금리 상승 땐 현실화 가능… 전문가들 "충격 커 급격한 청산 없을 것" 전망

일본 도쿄 외환시장 . 최근 일본 대출금리의 상승 우려가 높아지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의 주가가 급락하였고, 이로 인하여 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런데 ‘차이나 쇼크’의 여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차에 이번에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 우려’라는 문제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 주식시장이나 혹은 채권시장 등에서 주요한 투자 재원으로 공급되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대거 상환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주가나 채권 나아가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이르기까지 하락 충격이 강력하리라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 증시의 급락세도 그 내부에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또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 마켓의 주식시장들도 최근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될 것을 우려’한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단기간에 급락하기도 하는 등 충격을 받는 양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엔 케리 트레이드가 상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상환될 가능성이 낮아서 단기충격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인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 할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대체 엔 캐리 트레이드란 무엇이고, 왜 그것이 갑자기 이토록 국제 금융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란 이자율이 낮은 통화를 빌려 이자율이 높은 통화에 투자하는 거래를 통칭하는 말이다. 지금이야 엔화의 금리가 낮으므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때 달러 금리가 1~2 % 수준으로 낮았을 때에는 달러를 빌려 이자율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유행하기도 하였고, 또한 지금도 여전히 금리 수준이 낮은 스위스 프랑을 빌려서 이 자금을 수익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는 스위스 프랑 캐리 트레이드도 활성화되어 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금리는 20%를 넘는 경우도 다반사였던 터. 그러니 당시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였던 달러 대출을 받아 이 자금으로 국내에 투자하는 것도 캐리 트레이드였던 셈이다.

캐리 트레이드가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도 두 통화 간의 금리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엔화를 0.5%에 차입하고 이를 달러로 바꾸어 4.5%의 수익률을 얻는 미 국채에 투자하였다고 하자. 이렇게만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4.0%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대출금리 상승 땐 트레이드 매력 감소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환리스크 부분이다. 예컨대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려면 엔화를 빌려, 이것을 달러로 바꾸어서 투자하여야 한다. 따라서 나중에 대출기간이 만기가 되어 엔화 대출금을 상환하려면 반드시 달러를 다시 엔화로 바꾸어야 하고, 이때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캐리 트레이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예컨대 엔화와 달러화 수익률의 차이에 의하여 4.0%라는 이자 수익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엔화 환율이 상승하여 4.0% 이상의 환차손을 입는다면 결과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는 손해를 보게 된다.

둘째로 이자율 변동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경우, 가령 앞으로 엔화 대출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 예상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금리 차이에 의한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그만큼 감소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따라서 캐리 트레이드를 수행하는 투자자들은 최대한 수익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단순히 달러 국채만이 아니라 위험자산으로 간주되는 주식에도 상당 부분 투자한다거나 혹은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에도 일정 부분을 투자하는 것은 결국 수익률 차이를 크게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야 나중에 환율변동에 이상이 있더라도 일정 부분 손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엔 캐리 트레이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베팅하면서 두 통화 간의 이자율 차이를 노리려는 거래가 된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상환되거나 혹은 상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려면 엔화의 환율이 계속 상승하여 금리 차에 의한 수익을 상쇄할 정도가 되거나 아니면 엔화의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금리차를 이용한 거래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 되거나 하는 두 가지 경우 중의 하나에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엔 캐리 트레이드의 상환 가능성이 불거지자 엔화의 값이 단기간에 115엔대로 급등하는 등 환율의 변동폭이 컸다. 일각에서는 과거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단기간에 청산되면서 엔화가 급등하고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던 1998년 10월 같은 극단적인 상황도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당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성황을 이루면서 엔화는 달러당 147엔까지 주저앉기도 하였는데 러시아가 금융위기로 인하여 국가 디폴트를 선언하자 각국에 투자되어 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격하게 상환되기 시작하였고, 엔화의 가치는 단 4일 만에 무려 15%나 급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자율 차이를 노리던 수많은 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심지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운용하던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대규모 헤지펀드가 파산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던진 바도 있었다.

대규모청산 사태 가능성 낮아

과연 이번에도 98년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할까?

비관론을 펴는 사람도 없지는 않으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청산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엔화의 금리가 여전히 낮아서 캐리 트레이드를 하기에 아직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나 일본은행은 경기를 의식하여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생각은 없으며, 잘해야 올해 안에 1, 2차례 정도, 금리를 소폭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한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하게 상환될 가능성 역시 낮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금리가 2% 이상으로 인상되어야 비로소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엔화 환율의 경우도 급등할 공산이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일본 당국은 역시 일본의 경기나 수출증대를 위하여서라도 엔화 강세를 원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엔화 환율이 한동안 120엔대에 머무르던 올 1, 2월의 경우, 미국 의회 내의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일본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을 비롯하여 유로 존 국가들도 엔화 약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2월 초 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엔화 약세 문제가 논의에 오르기도 하였던 터.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엔화 약세를 밀고간 바 있다. 그것이 단적인 예이다. 일본으로서는 ‘강한 엔화’를 바랄 이유가 없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려운데 최소한 2,000억 달러는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따름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국제 외환시장 거래 규모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추산에 의하면, 국제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거래액만으로도 무려 2조 달러 이상에 이른다. 이를 고려하면 설령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거에 청산되어도 그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98년 당시의 국제 외환시장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외환시장의 규모도 커졌다. 결국 98년과 같은 대규모 엔 캐리 청산으로 인한 혼란사태는 러시아의 국가 디폴트 선언이라는 돌발적인 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돌발사태가 없는 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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