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홍보 전략의 새로운 코드로 부상

경제와 예술의 유쾌한 만남이 최근 기업 마케팅의 새로운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이 예술이나 문화적 요소를 마케팅이나 홍보 활동에 도입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문화 창조자의 역할까지도 자임하고 있는 것. 예전 기업들이 벌어들인 여유자금으로 각종 문화 사업을 벌이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수준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기업이 예술과 만나는 접점도 다양하다. 미술이나 음악은 물론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분야에서 예술 문화 마케팅이 시도되고 있다.

최근 현대카드는 문화 예술 마케팅을 가장 활발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대카드가 올해 선보인 기업광고는 무엇보다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하는 금융사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중점을 둔다.

현대카드의 TV 기업광고인 ‘Believe it, or not’ 캠페인에서는 광고가 시작되면 어린 딸이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요?” 매우 쉬운 질문이지만 현대카드에 다니는 아빠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는 “세계 1,2등 스포츠 선수를 대결시키고(현대카드 슈퍼매치), 뉴욕 현대미술관에 물건을 구입하러 가기도 하고(뉴욕현대미술관 MoMA 디자인 제품 판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을 출간하고(ZAGAT Survey 한국어판 출간), 헬기와 요트도 몰고(프리비아 헬기/요트/캠핑카 서비스), 콘서트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연다”고 대답을 한다.

이에 딸이 “카드사라며~”라고 반문하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하다. 카드사, 또는 금융사 업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일을 현대카드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 프리비아 / 뵈브클리코 러브시트 / 에르메스(왼쪽부터)
이 광고는 출범 4년 만에 메이저 카드사로 발돋움한 현대카드의 대변신을 말해 준다.

미술이나 음악, 외식, 스포츠는 금융과는 동떨어진 분야. 광고만 보면 현대카드가 금융회사라고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광고에서처럼 현대카드는 고객들에게 다채로운 예술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물론 흥미로운 분야에서 풍부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이 자연스레 현대카드를 찾게 된다는 마케팅 영업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업은 소비재, 통신, 유통, IT 등 타 업종에 비하면, 경영 및 마케팅 측면에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편이었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 고민하고 있지만 회사별로 큰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때문에 현대카드의 최근 행보는 카드 업계는 물론, 재계에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정태영 사장도 이에 대해 “다양한 시도로 카드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업계에서 현대카드를 두고 ‘카드사 맞아?’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회사도 아니면서 샤라포바, 비너스, 페더러, 나달, 플루센코, 김연아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을 잇따라 초청해 슈퍼매치를 열었고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일디보를 한국에 처음 초청하기도 했다.

모엣샹동 / 현대카드 일디보 내한공연 / 진로 발렌타인,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 마케팅(왼쪽부터)
또 예술과는 전혀 상관 없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뉴욕현대미술관 MoMA와 단독 제휴를 맺었다. MoMA의 디자인 제품을 파는 MoMA Retail은 국내의 대형 유통회사들이 파트너로 삼고 싶어 했던 곳인데, 다른 회사도 아닌 금융사가 국내 처음으로, 세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제휴를 맺었다.

여기에다 출판사도 아니고, 여행사는 더더욱 아니면서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인 ZAGAT Survey도 국내 최초로 출간했다. 여행객들의 필수 아이템인 ZAGAT Survey는 전 세계의 레스토랑과 호텔에 대해 신뢰도 있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책이다.

현대캐피탈 홍보팀 김민정 대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은 업종 구분 없이 독특한 비즈니스 컨셉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현대카드는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다양한 시도로 금융의 영역을 허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대카드의 경쟁상대는 더 이상 다른 카드사나 은행, 금융사로 한정 지을 수 없게 된 셈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미술 코드와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2000년부터 한국에서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제정, 시상해 오고 있는 것. 외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술계 지원을 통해 한국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물론 에르메스의 이미지 고양에도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국내에서 역량 있고 창의적인 작가들을 지원하는 이 상은 디자인을 강조하는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과도 맞아 떨어진다.

7회째인 올해 ‘2006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수상자로는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를 출품한 작가 임민욱이 선정됐다. 수상자를 포함한 최종 후보자들의 전시회도 지난해 11월 서울 청담동에 오픈한 에르메스의 현대 미술 공간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18일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명 화가의 명화 역시 새로운 마케팅 코드. 진로발렌타인스는 지난해 말 반 고흐 등 유명화가의 작품을 접목한 발렌타인 ‘고연산 숫자의 비밀’ 행사를 진행, 생소한 시도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로 발렌타인 위스키를 설명하는 스카치 위스키 업계 최고 권위 단체인 ‘키퍼즈 오브 더 퀘익(the Keepers of the Quaich)’의 빌 버거스 회장과 영국 BBC방송 ‘앤틱 로드쇼’ 진행자 루퍼트 마스까지 방한해 발렌타인 연산(age)에 숨은 비밀을 소개했다.

유호성 홍보팀장은 “발렌타인 위스키의 연산별 특징을 반 고흐, 프란츠 윈터홀터의 명화와 접목하여 소개하는 이색 행사”라며 “한마디로 위스키가 명화(名畵)를 만난 것이다”고 소개했다.

자동차 회사인 BMW 코리아는 지난해 말 국내 7인의 젊은 작가들이 BMW 7시리즈의 차체를 소재로 작업한 각각의 예술작품을 첫 공개하는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전’을 개최했다.

BMW와 한국 작가들의 만남이자, 산업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취지를 내세운 이 전시회는 BMW 그룹이 벌이는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동차와 예술을 접목했다. 분야별 작가 7명이 참여해 BMW 차체 보닛, 그릴, 문, 유리, 바퀴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 특징. 예술가들도 후원하면서 자동차를 예술로 보여주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한편 샴페인 브랜드들은 일제히 가구 디자인으로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투아이스 버킷(Tw'Ice Bucket), 클리코 아이스 재킷(Clicquot Ice Jacket), 셀러 박스(Cellar Box) 같은 일련의 액세서리들을 선보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알려온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하우스는 최근 업계 최초로 자사 브랜드 이름을 내걸은 가구를 선보였다.

유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그가 직접 디자인한 ‘클리코 러브시트(Clicquot Loveseat)’는 지난해 출시된 ‘로제’를 위해 제작된 한정판 의자로 커플을 위한 로맨틱 액세서리 격이다. 컬러나 디자인 모두 대담하면서 동시에 매우 정교한 의자란 점이 돋보인다. 한국에도 3점이 들어올 예정이다.

모엣 샹동(Moet & Chandon) 또한 지난해 디자이너 장민승과 함께 흥미로운 가구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전에 한 번도 시도된 적인 없는 샴페인과 가구의 만남 형식으로 장민승은 모엣 샹동 리미티드 에디션 테이블 12점을 선보였다. 이 전시회 역시 한정된 공간과 서로의 영역을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에서 시작된 이색적인 만남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다양한 시도에 대해 업계에서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업종의 틀에 국한되지 않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상품 및 서비스와 달리 컨셉트와 문화는 단기간에 모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