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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서 억만장자가 된 차용규 성공신화
기회의 땅 움켜 쥔 '마이다스의 손'
평범한 샐러리맨서 시가총액 100달러 넘는 거대기업 경영자로
카자흐스탄 구리 제련업체 카작무스 인수, 런던증시 상장 대박신화



2003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자산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세계 억만장자 명단을 발표했다. 1, 2위에는 예상대로 세계 최고의 부호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560억 달러)과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520억 달러)이 올해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세계 10대 부자에는 인도 미탈그룹의 락시미 미탈 회장(320억 달러)과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230억 달러) 등 아시아 부호들의 약진이 특히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29억 달러)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2억 달러) 등 10명의 억만장자를 배출했다.

그런데 ‘재벌가(家) 사람들만의 키재기’였던 한국 억만장자 대열에 처음 보는 낯선 이름이 포함돼 화제다. 주인공은 카자흐스탄 대기업의 대주주인 차용규(50) 씨. 그의 재산은 자그마치 13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돈으로 무려 1조2,200억원대.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과 같은 액수다.

카작무스 지분 대거 인수

차 씨는 특히 국내의 대표적 종합상사인 삼성물산에 근무했던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그가 한국에서는 재벌만이 오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억만장자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비결은 무엇일까.

차 씨가 오늘의 부를 축적하는 데 첫 번째 징검다리는 삼성물산이 놓아줬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한 그는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1995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현재 수도는 아스타나)로 날아갔다. 삼성물산 알마티 지점이 카자흐스탄 최대의 구리 채광ㆍ제련 업체인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맡게 되면서 현지 경영진에 합류한 것. 그로서는 운명적인 인사 명령이었다.

카작무스는 카자흐스탄에서도 손꼽히는 원자재 관련 업체였지만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낡고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탈피하지 못해 파산 직전에 몰린 상태였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작무스의 위탁 경영을 공개 입찰에 부쳤고 가능성을 눈여겨본 삼성물산이 낙찰을 받아 경영을 맡게 됐다.

삼성물산은 카작무스를 떠맡자마자 2억5,000만 달러의 대규모 재원을 투자해 회사를 완전히 뜯어고쳤다. 생산, 조달, 회계 전산화 등 경영 시스템을 현대화했고 발전소, 광산 등을 인수해 원재료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초의 일관 구리생산 체제를 갖췄다.

게다가 3만여 명의 근로자들에게 고용 승계를 보장하고 그동안 체불된 임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가 하면 복지시설 등에도 적잖은 투자를 했다. 처음에 삼성물산을 ‘점령군’으로 경원했던 현지인들도 한국인 경영진의 현지 친화적 경영에 마음을 열었다.

카작무스는 삼성물산의 위탁 경영 2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뤄냈고 위탁 경영이 만료된 2000년에는 자산가치 30억 달러의 세계 9위 구리 제련업체로 거듭났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삼성물산의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해 정부 지분 매입을 권유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위탁 경영 만료 뒤 카작무스의 지분 4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이처럼 삼성물산의 카작무스 사업이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현지에서 16명의 삼성팀을 이끈 차 씨의 기여가 컸다. 이런 공적을 평가받은 그는 98년 부장으로 승진한 뒤 불과 1년 만인 99년 상무이사보로 초고속 승진했다.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의 최대주주로 직접 경영을 맡기 시작한 2000년 6월에는 공동대표에까지 올랐다.

그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눠온 한 지인은 차 씨에 대해 “머리 회전이 빠르고 특히 재무적인 부분에 능력이 탁월하다”며 “업무 추진력이 강한 것도 그의 장점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샐러리맨 입장에서는 국내 최대그룹 삼성에서 승승장구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 하지만 차 씨 앞에는 스스로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삼성물산은 카작무스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철수했다. 보유 중이던 45%의 지분은 카작무스 사업에서 파트너 역할을 했던 카자흐스탄 관계자들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0년 기준 연 매출 7억 달러, 영업이익 3억 달러를 올린 알짜 기업을 불과 몇 년 만에 매각했다는 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삼성물산 측은 카작무스 인수 직후 “향후 20년간 매년 40만 톤 수준의 생산을 할 수 있으며 해외영업과 배당 등으로 연간 600억원 정도의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하게 됐다”고 발표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작무스는 2006년 기준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가 넘을 정도로 초우량 기업이 됐다. 이 때문에 탁월한 사업 전망 능력과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삼성이 불과 몇 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내팽개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홍보실 관계자는 “수익성, 컨트리 리스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지분 매각 후 철수를 결정했다”며 “카자흐스탄이 지금은 크게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적절한 경영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삼성물산은 철수를 결정했지만 차 씨는 잔류를 결심했다. 기회의 땅이었던 카자흐스탄에서 뭔가 새로운 야망을 일구기 위해서였다. 야망은 착착 진행됐다. 차 씨는 현지 고려인 3세인 블라디미르 김(46)과 함께 카작무스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다. 그리고 차 씨와 블라디미르 김은 각각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나눠 맡았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김은 과거 사회주의 시절 카자흐스탄 콤소몰(Komsomol, 공산주의청년동맹) 소속으로 알마티 지역 청년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업고 삼성과 사업을 함께 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차 씨와 블라디미르 김이 카작무스 인수를 위한 거액의 자금을 어떻게 동원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스위스계 금융기관의 도움을 얻어 인수 자금을 확보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차 씨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자금 동원 방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차 씨는 카작무스를 인수한 이후 2005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카작무스는 상장 이후 국제 구리시장의 호황 덕분에 대박을 터뜨렸다. 주가가 치솟으면서 시가총액 100억 달러의 블루칩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로써 대주주였던 차 씨와 블라디미르 김도 억만장자의 명함을 얻게 됐다.

차 씨의 대박 신화는 카자흐스탄 교민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알마티 소재 코트라 무역관의 박성호 주재원은 “차 씨는 샐러리맨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 사례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고 전했다.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최근 차 씨의 성공담이 알려지면서 언론이나 출판사 등에서 그의 연락처나 이메일 주소를 묻는 문의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밝혔다.

언론 노출 꺼려 여전히 베일에

차씨는 지금 영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작무스는 런던증시 상장을 계기로 본사를 영국에 설립했다. 차 씨와 블라디미르 김 등 주요 경영진도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차 씨는 자신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데 대해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다. 카작무스의 한국증시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런던 본사를 방문했던 재정경제부 이재영 금융허브협력과장은 “영국까지 갔지만 차 사장이나 블라디미르 김 회장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며 “차 사장은 이름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적잖이 꺼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측근에 따르면 차 씨는 지난해 말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 당시 그는 “(카작무스) 사장 직위에 변동이 있을 것 같다”며 “조만간 한국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 씨가 귀국을 결심한다면 한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 씨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삼성물산의 옛 동료들은 그의 성공 스토리를 비교적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단기간에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한 까닭에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기에 부러움도 못 느끼기 때문일까. 역시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억만장자는 ‘오르지 못할 나무’人이 보다.



입력시간 : 2007/03/19 16:2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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