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스타 모델료 10억 넘기도… 공헌도에 따른 모델료 재산정 작업에 착수

광고주들이 화났다. 왜냐고? 광고 모델료가 비싸도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스타 연예인들의 광고 고액 출연료가 도마 위에 오른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엔 그 거품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광고주들이 치솟는 광고 모델료에 대해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다. 광고주들의 권익단체인 한국광고주협회(회장 민병준)는 올 한 해 주요 역점 사업의 하나로 광고 모델료 문제를 선정하고 대책 마련에 팔을 걷었다.

이를 위해 광고주협회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협회는 최근 국내 300대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했다.

‘광고 모델료, 주는 사람 맘인가? 아니면 받는 사람 맘인가?’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주는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 사는 일에서, 또 시장원리로도 대부분 주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광고 시장에서는 다르다. 이미 시장원리 하에서도 광고주들은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처하는 지경이 돼버렸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사의 광고 모델과 관련, 광고주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과다한 모델료’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제작비의 26.4%를 차지한다. 이는 ‘모델 시장이 작아 모델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는 21.0%의 대답과도 인과 관계가 있다.

광고주들은 또 모델 계약, 선정 과정에서 ‘촬영 스케줄 조정 및 행사 참석 등에 비협조적이다’ 14.5%, ‘고자세로 협상이 어려운 모델 에이전시(매니지먼트사)’ 8.1%, ‘자기관리가 철저하지 못해 브랜드에 악영향을 끼친다’ 5.9% 등 불만 사항들을 토로했다.

현재 국내 광고시장에서 모델들이 가져가는 돈은 얼마나 될까? 모델 계약료와 관련해서는 1년 전속모델 계약을 기준으로 4억~5억원을 지출한다는 대답이 29.2%로 가장 많았다. 이어 6억~7억원이 20.0%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특히 10억원 이상의 고액을 지출하는 경우도 전체 응답자 중 6.2%를 차지해 적지 않은 비중을 보였다. ‘10억 이상’이라고 답한 광고주는 소위 빅 모델과 전속계약을 한 경우다.

그럼에도 고액의 광고료를 지불한 이들 광고주 대부분은 ‘적정 모델 계약료는 이 보다 절반 수준인 4억~5억원 정도’라고 대답해 과다한 광고 모델료에 불만을 표시했다. 조사 결과를 집계하면 현재 광고 모델 중에 4억원 이상을 받는 경우는 무려 63%에 달했다.

“국내 광고 모델료로 1억~2억원만 받았어도 최고 수준의 금액이라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광고계 관계자는 요즘 연간 전속 광고 모델료로 ‘10억 단위’ 얘기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은 ‘뭔가 모르게 한참 부풀려 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최근 광고 모델 업계에서 웬만한 톱 모델은 10억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금액이나 계약 내용은 공개를 안하지만 10억원을 돌파한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스타들이 대부분으로 특히 화장품과 가전, 아파트 건설업계 등에서 모델료 폭등을 선도하고 있다.

광고주들에게 설상가상인 것은 가파른 광고 모델료 폭등세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0억원을 돌파한 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0억원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광고주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 불황으로 많은 직장에서 임금을 동결하고, 국가 경제 전반에 위기설이 퍼지고 있지만 광고 모델료만은 오불관언,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셈이다.

광고계의 한 관계자는 “수급관계다, 시장원리다 해서 모델료가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최근 수년 새 모델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격하게 폭등하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경제 상황에 비춰볼 때 모델료 상승 곡선이 너무 가파르다는 것.

이처럼 국내 광고모델료가 급격한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는 데는 광고주들의 ‘빅모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우선으로 꼽힌다. 얼굴만 보거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해 손쉽게 제품 이미지를 구축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관행이 만연하다.

여기에 최근 빅스타들이 몇몇 거대 연예기획사나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뭉치게 되면서 발생한 ‘수급 구조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쉽게 말해 소위 ‘빅스타’라고 할 만한 전문 모델들이 불과 몇 개의 기획사 소속으로 편입되면서 ‘모델 시장의 독과점’ 현상이 발생한 때문이다.

즉 광고주 입장에서는 예전에는 여러 빅스타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가격선을 절충했지만 요즘은 대형 기획사 몇 군데하고만 협상을 벌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광고주들은 “기획사들이 이제는 ‘안 하려면 관둬라’라는 식으로 턱없이 높은 모델료를 부른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한마디로 이제 광고계에서 대형 연예 기획사는 명실상부 ‘갑’의 위치에 오른 셈이다. 여러 명의 빅스타들을 거느리면 자연스레 ‘칼자루’를 쥘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광고주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모델 선택의 폭이 크게 좁아졌다.

또 빅스타뿐 아니라 신인 모델들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 비행에 가세하고 있다. “이제는 TV에 몇 번 나와 얼굴을 보여준 신인이라면 1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다반사가 돼버렸습니다.” 광고계의 관계자는 “몇 년 전 수천만원대에 머물던 신인 모델료도 2~3배 뛰어올랐다”고 말한다.

갑과 을의 위치가 역전되다보니 전에 볼 수 없던 여러 불평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연히 광고주들로부터다. “1년 전 5억원에 계약한 모델이 좀 뜨니까 바로 10억원을 부르던데요.” 광고주를 특히 애먹는 경우다. 기존에 전속모델로 활동하던 연예인이 광고를 통해 인기를 얻거나 재계약 시점에서 활동이 많아져 갑자기 뜨게 되면 모델료의 급격한 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마땅한 기준도 없이 부르는 게 값이다보니 적절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빅모델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소속사와의 업무 협의가 어렵다고 말하는 광고주들도 많다. 소속사 역시 빅모델만큼이나 고자세로 나온다는 얘기다. 한 광고주는 “행사에 참석키로 약속해놓고 불참해 행사를 망쳐놓고는, 다음날 매니저가 사과한다고 와서는 허리도 안 굽힌 채 미안하게 됐다고 한마디 하고 가더라”고 말했다.

또 A라는 회사의 의류나 신발을 광고하고 있는 연예인이 기자간담회나 공식 석상에서 경쟁 회사의 제품을 입고 나오거나 심지어 그 제품을 칭찬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 광고주는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광고계의 풍토가 바뀐 데는 광고주들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스타급 연예인들만을 모델로 내세우면 자연히 광고 효과가 높아지고 또 제품도 잘 팔릴 것이라는 그동안의 손쉬운 환상에 너무 의존해 왔다는 것. 창의적으로 ‘크리에이티브가 강조된’ 광고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광고주들은 협회 차원에서 모델 광고료 재산정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광고 모델이 실제 제품 판매에서 얼마나 공헌을 하는지를 판별하기 위해 구체적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장에서의 영업 성적이 판매나 마케팅, 가격정책, 트렌드, 광고 모델 중 어느 요인에 의해 비롯된 것인지 산정해 보겠다는 의도다.

한국광고주협회는 이를 위해 외국의 광고 모델 현황과 가치 평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외국의 사례를 원용해 국내의 적정한 모델료 책정 기준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협회는 또 “일단 올 상반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반기에 모델 측과 협의를 해 합의를 이끌어 낼 생각이다”며 “합의가 안 되더라도 조사 내용을 공개,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