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왜곡의 주범 '통합질주' 수술… IT프로젝트 '특정기업 몰아주기' 사라질지 주목

소프트웨어 업계는 정부의 SW분리발주 가이드라인 발표를 왜곡된 시장질서 바로잡기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소프트웨어 전시회 모습. 원유헌 기자
4월 중에 정보통신부에서 정부 공공 IT프로젝트에서 적용해야 할 가이드라인 하나를 발표할 예정이다. 바로 ‘소프트웨어(SW) 분리발주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SW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아니,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하나 나오는 것을 놓고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SW 분리발주’는 지식정보산업의 핵심이라 할 소프트웨어 업계의 해묵은 과제이자, 화두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IT 업계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왜곡된 관행 하나를 개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SW를 개발해 먹고 사는 업체들 처지에서 분리발주는 ‘간절한 염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앞으로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적용할 SW 분리발주 지침서를 만들겠다”고 하니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분리발주의 반대는 ‘통합발주’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통합발주를 해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통합발주에 대해 SW 개발업체들의 반감은 대단히 높다. 통합발주 때문에 국내 SW산업이 망가지고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다. 왜 그럴까.

통합발주란 정부에서 IT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특정 기업 한 곳에 모든 것을 몰아서 한꺼번에 발주를 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시스템의 전체 설계부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SW, 그리고 사후 서비스까지 모든 것을 통째로 일임하는 것이다.

분리발주는 업계의 간절한 염원

이런 일을 주업으로 하는 업체가 바로 시스템통합(SI) 업체다. 건설업을 예로 들면 대형 건설회사인 셈이다. 그리고 시스템통합 업체는 대부분 삼성, LG, SK 등 대기업들이다. 시스템통합 사업을 건설업과 흔히 비교하는 배경이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시스템통합 업체 한 곳만 상대하고 관리하면 된다. 업무가 깔끔하고 단순해진다. 또 정보시스템은 전문적인 분야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현재 정부가 발주하는 IT프로젝트의 대부분은 통합발주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통합발주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통합발주가 관행으로 이어져오면서, 시장이 왜곡돼 왔다는 게 문제다.

이런 것이다. 통합발주 체제 아래에서 SW를 개발하는 수많은 업체들(하드웨어도 마찬가지지만)은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IT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반드시 대형 SI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치열한 경쟁, 거의 대부분 덤핑 수준의 가격경쟁을 벌이며 SI업체에 줄을 선다. 이 같은 상황을 SI업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른바 통합발주가 계속 이어져오면서 시장은 ‘권력의 집중화’를 초래하고, 집중된 권력은 부패하기 십상이다. 현재 국내 SW시장이 바로 이런 불공정 하도급 상황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불공정 하도급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내 SW산업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IT프로젝트 발주 시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할 기업 따로, 그 시스템에 들어갈 SW 공급업체를 따로, 선정해 달라’고 요구해왔던 것이다.

2005년 공정거래위는 처음으로 SI업체와 중소 SW개발업체 사이의 불공정 거래 사례를 대거 적발,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대형 SI업체들은 이후 중소 SW업체와 상생협력을 하겠다며 여러 가지 대책과 정책을 마련해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후 시장 상황이 개선됐다고 믿는 SW업체들은 없다.

업계 '기대 반 우려 반'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SW분리발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하니, SW업계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연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나오겠느냐”며 미리부터 우려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 이번에는’ 하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최근 유명 SW개발업체 대표는 “업계 대표로 초대된 자리에서 정통부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업계의 현실을 예전보다는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비쳤다”며 말했다.

물론 SW 분리발주에 대한 대형 SI업체들의 반발 역시 강하다. 정보시스템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발주처에서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통합발주의 경우 시스템 구축 전체 업무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예산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다. 기득권의 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SI업체들 입장에서 SW업체들이 자신들의 통제권 밖으로 나간다면, 이는 당장 수익의 문제와 직면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찰을 따내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들어갈 재료(SW)의 가격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는 그래왔는데 바로 이 가격협상력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는 것은 기업 자체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SW시장이 질적 경쟁력보다는 가격 경쟁력이 우선돼 왔다는 방증이며, 가슴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가 내놓을 가이드라인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가이드라인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과연 그것이 얼마나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정부는 과연 얼마나 집행 의지를 보여줄 것인가. 국내 SW 업계는 비상한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다. ‘태산명동서일필’이 아니길 기대하면서.

삼성 SDS 김인(가운데) 사장이 IT인재 육성과 우수 소프트웨어 발굴을 위해 실시한 '대학생 IT동아리 페스티벌'에서 창작소프트웨어를 시연하고 있다.

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 ssanba@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