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관련 컨퍼런스에서 블로거만을 위한 취재 편의 제공, 달라진 위상 실감

세계적인 IT기업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주최하는 대규모 기술컨퍼런스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을 ‘세계 만방에 고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 전 세계 고객과 협력사들을 초청한다.

에스에이피(SAP)라는 기업이 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서열 3위에 올라있는 거대기업이다. 기업의 종합 경영관리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ERP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경영관리는 현재 SAP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상당수가 SAP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SAP가 매년 주최하는 기술컨퍼런스가 ‘사파이어(SAPPHIRE)’다. 올해 행사가 지난 4월23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렸다.

3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 초대된 사람만 약 1만5,000명에 이른다. 주로 SAP의 제품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객사의 정보관리 담당자나 자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책임자들이다.

세계 ERP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인 만큼, SAP가 어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준비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 취재 열기도 뜨겁다. SAP 역시 자사의 기술과 제품 홍보 차원에서 전 세계 IT전문 기자들을 대거 초대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왔다.

블로거들의 달라진 위상

올해 2007년 사파이어 행사에서 눈에 띄는 것이 블로거들의 위상 변화다. 이번 행사에서 취재 편의를 제공받았던 취재 그룹에 기자들 말고 또 다른 그룹이 바로 블로거들이다.

SAP는 행사장 한켠에 대형 ‘프레스룸’을 마련해 놓고 취재진들을 위해 인터넷 접속 환경과 컴퓨터, 각종 보도자료 및 기술자료 등을 수시로 제공했다. 또 자사 각 사업부별 임원진 및 개발자들과 취재진이 수시로 만날 수 있는 편의 등을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 SAP는 프레스룸 한쪽을 통째로 블로거들에게 할애해줬다.

SAP는 행사에 초대한 블로거들에게 행사 기간 내 애트랜타에 체류할 수 있는 모든 비용 일체를 제공했다. 이들과 자사 개발자들과의 미팅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자리를 마련해줬다. 블로거의 미디어 파워를 인지한 SAP의 적극적인 홍보 활동의 단면인 것이다.

SAP가 블로거들에 주목한 이유는 이들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이 워낙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에 블로거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SAP는 지난해 1월부터 IT 솔루션 업계의 유력 블로거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유명 블로거들의 명단을 파악해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 강화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SAP가 관리하고 있는 주요 블로거만 약 7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SAP는 이번 2007년 사파이어 행사에 이들을 처음으로 공식 초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SAP는 이 같은 일을 하는 전담팀을 꾸렸고, 이 팀에서 현재 유럽과 아·태 지역의 블로거들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는 SAP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 등 주요 IT 거인들도 이미 블로거 관리에 착수했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스스로 기업 블로그를 만들어 블로거와 소통할 수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1인미디어 블로그에 대한 기업들의 이 같은 인식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블로거, 그들의 미래는

이번 행사에는 국내에서도 IT 전문기자 몇 명이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초대를 받은 기자들 명단에 블로그 기반의 ‘1인미디어 뉴스공동체’ 블로터닷넷(http://www.bloter.net)의 블로터도 포함됐다.

블로터닷넷은 ‘블로거와 리포터’를 겸한다는 의미의 블로터(Bloter)들이 모여 만드는 IT 전문미디어로 지난해 9월 출범했다. SAP의 행사에 국내 파워블로거 중 한 사람이 공식으로 초대받았다는 얘기다. 블로거 파워의 조류가 어느새 한국에도 불어닥친 셈이다.

한국의 블로거와 미국의 파워블로거가 프레스룸에서 잠깐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이 블로터닷넷에 소개됐는데 흥미롭다. 블로거로 활동하는 데 따른 애로사항이나 수입 정도, 블로그의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등이 오갔다.

이번 행사에 초대된 블로거들은 총 10명. 대부분 전업블로거가 아니라 현직이 따로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IT업계 종사자들에게도 낯이 익은 댄 파버(Dan Farber) 씨넷(CNET) 부사장 겸 지디넷(ZDNet) 편집장이 기자가 아닌 블로거로 초대를 받았다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미국에서도 전·현직 기자들이 파워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직 기자 출신이면서 전업블로거로 뛰고 있는 데니스 호울렛은 블로거로 활동하는 것이 “더 자유롭고 글쓰기도 한결 수월하다. 기자로 있을 때는 회사의 룰을 따라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블로거를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이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기자이면서 동시에 전문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는 댄 파버 지디넷 편집장은 기자와 블로거의 차이에 대한 견해를 잘 정리해준다.

“기자는 기본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한 객관성에 중점을 두고 글을 써야 한다. 또 일반적인 언론사 편집 과정을 거치게 된다. 블로그의 경우 주관적인 인상과 자신의 견해를 즉각적으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향후 기자와 블로거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가야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오디오, 비디오 등 멀티미디어도 잘 활용하는 멀티 플레이어 리포터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블로거는 한 사건을 보고 빨리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정형화된 글쓰기를 탈피해 기사 자체가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진화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블로거와 기자는 앞으로 경쟁하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미국 블로거들의 견해가 의미심장하다. “기자와 블로거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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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ssanba@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