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00억원 규모의 거래시장, 경매가도 연일 최고가 행진… 블루칩 작가 수익률 30% 육박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 출장 중 최고급 호텔에 묵었다. 어릴 적부터 화실을 다니며 미술에 대해 애정을 키워온 박 회장은 이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베트남 신진작가의 대형 풍경화 한 점에 매료돼 호텔 지배인에게 이를 팔 것을 설득했다. 결국 한화 500만원에 구입했다.

그 후 이 작품은 홍콩 미래에셋자산운용사 빌딩 로비에 걸리게 됐다. 서울 여의도 미래에셋 본사 7층 임원실이 있는 복도에는 이같이 박 회장이 직접 사 모은 국내 작가들의 그림과 중국 등 각국의 작품들이 빽빽이 전시돼 있다.

박 회장은“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300만~500만원만 주면 정말 좋은 그림을 살 수 있고 한국에 오면 족히 2,000만원은 넘을 것”이라며 “그림은 정말 괜찮은 재테크 수단으로 앞으로도 그림에 계속 투자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 증시보다 더 뜨거운 활황세

최근 미술시장에 돈 바람이 불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평가받는 화가의 그림을 잘 골라 몇 년만 소장하면 경매시장 등을 통해 수익률을 3~4배 정도 올려 되팔 수 있는 소위‘아트 테크(Art tech)’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한 이름의 화가 그림은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고, 매수 예약마저 밀려있는 등 그림시장은 증시보다 더 뜨거운 활황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민화가’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잇따라 바꿔놓았다. 최근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박 화백의 유화 작품‘빨래터(20호)’는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시작가 33억원에 출발한 이 그림은 경합 끝에 추정가 35억원보다 10억원 이상 높은 금액에 낙찰됨으로써 박 화백은 처음으로 세계 500인 작가에 드는‘밀리언 달러 작가’반열에 올랐다. 기존의 최고가는 3월 말 경매에 나온 박 화백의‘시장의 사람들’로 25억원에 팔렸다.

김환기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열린 경매에서 김 화백의‘꽃과 항아리(80호)’는 추정가보다 10억원 이상 높은 30억5,000만원에 낙찰돼 그의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은 빛을 발한다. 서양화가로 젊은 작가인 홍경택의 ‘Pencil I’은 5월 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 55만 홍콩달러의 10배 이상인 648만 홍콩달러(한화 7억7,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작품의 홍콩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같이 국내외 경매시장에서 유명 작가 작품들이 잇따라 최고가 행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이색적인 풍경만은 아니다. 저금리와 부동산 투자 억제정책, 금융시장의 대체투자 개발 붐 등으로 넘쳐나는 유동자금이 2005년부터 미술시장에 몰리면서 콜렉터들의 아트테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술품 전문 경매회사 K옥션과 국내 최초 아트펀드를 운영 중인 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연간 거래 규모는 약 3,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275개의 화랑가에서 열리는 각종 기획전과 아트페어 등에서 공개적으로나 매우 은밀하게 이뤄지는 거래금액이 전체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최근 은행과 증권사들도 앞다퉈 그림에 투자하는 아트펀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175억원이 투자돼 특정 화랑을 통한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경매시장(옥션)도 급팽창하고 있다. 2005년 170억원 규모였던 경매시장은 1년 사이 600억원 규모로 3배 정도 몸집을 불렸고, 올해는 그 규모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미술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2,000억원 규모였던 수입 미술품시장은 올해 규모가 30% 이상 커질 전망이다.

미술품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뛰어난 내재가치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예약하면서 문화시대가 도래했고 문화 상품의 소비 급증과 더불어 문화 소유권을 누리려는 미술품 애호가가 급증하면서 그림시장은 미래에 실현 가능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김순응 K옥션 사장은 “그림의 경우 향후 트렌드 변화에 따라 가격이 수십 배 뛸 수도 있다”며 “실제 박수근과 천경자, 이우환, 도상봉 등 소위 10억원 이상 낙찰 작가인‘블루칩’작품의 경우 몇 년 새 가격이 3~4배 이상 상승했다”고 말했다.

시장 성장에 따라 미술품 투자 수익률도 급증하고 있다. K옥션에 따르면 2001년부터 거래된 ‘블루칩’ 작가 15명의 작품 285점의 연평균 수익률은 2005년 15.7%였으나 지난해 30% 선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나타났다.

■ 금융권 아트펀드 상품 출시 유행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프라이빗 뱅킹과 아트펀드 상품 출시도 줄을 잇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사모(私募) 형식의 아트 펀드인 굿모닝신한증권의 명품아트펀드와 스타아트펀드(한국미술투자)는 10~20%의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냈다. 한국미술투자가 지난해 12월에 출시한 스타아트펀드의 4개월 누적 수익률은 18.6%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종합주가지수(KOSPI) 상승률(12.3%)보다 높고, 영국 파인아트펀드의 연간 수익률(21.5%)에 근접한 수준이다. 최근 한국투자증권(박여숙 화랑)과 아라리오갤러리, 마이클 슐츠 화랑 등도 줄줄이 새로운 아트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굿모닝신한증권도 올 하반기 명품아트펀드 2호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 아트펀드를 통해 올 한 해 600억~1,000억원의 금융권 자금이 미술시장으로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아트펀드도 있다. 영국의 파인아트펀드회사는 중국 미술품에만 투자하는 차이나 아트펀드(설정액 250억원)를 최근 출시했으며 한국 투자자를 상대로 25억원을 배정해 놓은 상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이 회사 대표 필립 호프먼은 “향후 5년간 미술시장은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일 것”이라며 향후 미술시장의 전망을 낙관했다

한편 그림 구매열기가 일부 한정된 부유층에서 개인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5월 초에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지난해보다 1만5,000여 명이 늘어난 6만4,000명의 관람객이 참여, 총 175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거래규모가 100억원이었다.

배병우와 이기봉 등 인기 작가 전시관에는 구매를 위한 줄이 이어졌고 20여명 작가의 작품은 첫날 판매가 완료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미술품 시장이 과열됐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모든 작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고 실제 시장에서 작품이 유통되는 작가도 한정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품 소장에 의미를 두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필립 호프먼 영국 파인아트펀드 최고경영자(CEO)

"큰손들 참여… 드라마틱한 성장 계속 될 것

“글로벌 미술시장은 올해 500억 달러(47조원) 규모로 크게 늘어날 것이고 이 같은 드라마틱한 성장은 앞으로 5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품 투자전문 아트펀드 회사인 영국 파인아트펀드의 필립 호프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미술품 투자자를 찾아 방한했다.

최근 K옥션이 주관한 ‘세계 미술시장 현황 및 전망’ 콘퍼런스에 참석한 호프먼은 “선진국 금융자본을 비롯 중국과 중동, 인도 등 각국으로부터 새로운 큰손들이 미술시장에 속속 참여하고 있어 앞으로 미술시장의 빅뱅이 예고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펀드를 출시한 데 이어 7월 중 인도펀드를 낼 계획”이라며 “한국도 장기적으로 펀드 출범 대상국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국의 대자본가 1, 2명이 자신이 만든 파인아트펀드 참여를 고려 중에 있다”며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과열양상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연간 40% 수익률을 낼 수 있고 5년 뒤에 200% 수익을 낼 수 있는 작품을 대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파인아트Ⅰ’은 투자 3년째로 평균 수익률이 기대수익률을 15% 초과한 47%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프먼은 미술 투자를 위한 올바른 선별방법을 소개했다. 우선 어떤 작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림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일단 투자 고려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그는 또 얼마나 희귀한 작품인지, 작가가 어느 화랑에 속해 있는지, 권위 있는 미디어에 소개됐는지 여부도 구매 판단에 고려할 요소라고 강조했다.

호프먼은 재테크 차원에서 파인아트펀드가 경매보다 유리하다는 점도 설명했다 그는 “경매회사에서 12만 달러에 작품이 낙찰됐다면 위탁자는 8만 달러를 갖고 경매회사가 4만 달러를 갖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라며 “그러나 파인아트에서 거래를 하면 평균 5%대 수수료만 부담하고 위탁자가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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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만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