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증가로 물가상승 압박한은 총재 경기회복 자신감 속 하반기 콜금리 인상 시사채권수익률은 이미 인상 반영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이라면 모든 금융시장의 종사자들이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을 통하여 금융정책의 향방을 점칠 수 있고, 나아가 앞으로 시장의 움직임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던 시절,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금융시장 종사자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린스펀 효과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그린스펀은 자신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되도록 두루뭉수리하게 말하였고, 그러니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의 발언에 담긴 속뜻을 해석하느라 골머리를 싸매기도 하였다.

반면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자리에 오른 벤 버냉키의 발언은 명쾌하다.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시장에서 오해하지 않도록 말하는 데 더 주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경우는 그린스펀보다는 버냉키에 가깝다. 물론 그도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이다 보니 자신의 발언이 가져다줄 파장에 대하여서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앞으로 한국은행의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그가 지난 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에 금리를 올릴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하였다.

일단 과거의 예로 보거나, 혹은 그의 발언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 돈 많이 풀려 물가 상승 압바그오 이어져

이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후의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 금리 부분만을 떼어 놓고 본다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시중의 유동성 증가에 주목하였다.

그는 “금통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과제 중 하나가 높은 유동성 증가율의 지속 현상이며, 높은 유동성 수준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하반기 금리 인상 시사 발언으로 콜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금통위 회의 모습.

다시 말하여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있어서 물가를 자극할 위험이 크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실제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들이 시중 유동성 증가세가 완화되지 않고 있는 데 우려를 표명하였다는 것이 금통위의 의사록에서도 나타나 있다.

시중의 유동성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방책은 금융긴축의 고삐를 조이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의당 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로, 그는 현재의 경기에 대하여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였다. 그는 “올해 하반기로 가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 속도가 조금씩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는 4.5% 아래쪽, 하반기에는 4.5% 위쪽으로 성장률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수출, 내수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국내 경기가 상승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수출이 지난 5일까지도 두 자리 수 신장세를 유지하였고, 설비와 건설 투자도 늘어나고 있으며 민간소비도 대체로 회복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국내 경기회복에 대해 가지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따라서 이 발언을 굳이 금리 인상과 연결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으로, 만일 한국은행이 경기회복에 자신이 없다면,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은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경기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가 된다.

셋째로, 이성태 총재는 물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소비자물가가 2%에도 미치지 않는 시기는 지났다”며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물가의 상승폭은 낮은 편이었지만 앞으로는 상승폭이 커질 공산이 높다는 뜻이다. 이는 늘어난 유동성과도 관련이 있으며, 혹은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 총재가 밝혔듯 물가가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면, 결국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 인상의 조치를 취할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다.

넷째로, 그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실물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받고, 그는 “실물경제는 성장률만이 아니라 물가도 있고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측면도 포함돼 있으며, 한국은행은 경제 전체의 균형과 안정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 전혀 없다면, 아무래도 이런 질문에는 부정적으로 대답하기 쉽다. 그러나 이 총재는 가능성을 남겨두었고, 또한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답변하여, 설령 경제의 다른 부분에 부담이 가더라도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하게 나타낸 셈이다.

■ 중국·일본 등도 금리 인상 가능성 커

더구나 이런 금리 인상 무드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의 금리 인상 분위기가 거꾸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점도 상당 부분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의 금리가 조만간 인하될 일만 남았다는 데 동의하였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인플레 우려를 빚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국채 수익률은 큰 폭으로 뛰어 올랐다. 연방준비위원회가 물가상승 위험을 꾸준히 지적하고 있으며, 거기에다 미국의 경기도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금리 인하 주장은 쑥 들어갔고, 시장은 대체로 미국의 금리가 최소한 동결될지언정 인하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이어 최대의 시장인 유로존의 경우 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일, 기준금리를 3.75%에서 4.00%로 0.25% 포인트 인상하였다.

결과적으로 유로존의 기준금리는 18개월 만에 두 배가 되었으며, 6년 만에 최고 수준에 올라선 상태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유로존의 금리인상이 올해 안에도 또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로존이 견고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러한 금리 인상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웃나라 중국의 경우도 과열된 증시를 진정시키고 인플레 위협을 억제하기 위하여 벌써 여러 차례 금리를 인상하였으며 또한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등 긴축정책의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증시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중국 통화당국은 언제건 재차 금리를 인상할 공산이 높다. 그리고 일본도 금리를 올릴 공산이 있다. 일본은 작년에 제로금리 정책을 청산한다고 선언한 바 있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하여 현재 0.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다소간 정치적인 요인과 겹쳐있어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시장은 대체로 올해 10월경 기준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처럼 여기저기 글로벌 시장에서 금리가 상승한다면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외적으로 모든 것을 종합한다면, 하반기에 금리가 오를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그리고 시중의 채권 수익률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국내 콜금리를 4.50%로 인상한 이후, 이번 달까지 10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 시중의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당시 4.6%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5.3%대까지 치솟은 상태이다. 금리 인상 전망이 채권 수익률에 이미 반영된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인상시기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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