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보험 팔 수있는 제도 확대되자 두 업계 '밥그릇 싸움'보험측-강압·불완전 판매 등 고객 피해 많아은행측-금융 당국 단속으로 폐해 없어졌다

은행과 보험업계가 뜨거운 공방을 벌였던 2004년 여름. 한국손해보험대리점협회 회원 1만여명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방카슈랑스 철회 총 궐기대회를 갖고 있다. 김동호 기자.
은행업계와 보험업계가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서로 사업영역이 다른 두 업계가 첨예하게 맞선 건 ‘방카슈랑스’ 때문이다. 방카슈랑스는 보험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03년 도입됐다.

은행과 보험업계는 이미 2004년 여름에도 한 차례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당시에는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었다. 이번에는 4단계 확대 시행이 싸움에 불을 댕겼다.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3년 만에 다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남궁훈 생명보험협회장과 안공혁 손해보험협회장은 지난달 29일 손해보험협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 철회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양대 보험업계의 수장이 직접 나서서 의견을 표명한 것은 그만큼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에 따른 위기감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들은 말로만 외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도 조목조목 제시했다. 우선 보험 소비자의 편익 증대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고객 피해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양 협회의 2006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상품에 대한 부실 설명 등 불완전 판매의 비율이 보험설계사를 통해 판매된 경우에는 0.56%에 그쳤지만 은행 창구에서 판매된 경우에는 12.6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100건의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보험회사는 불완전 판매가 1건도 채 안되지만 은행은 12건을 넘는다는 것이다.

또한 보험료 납부 24회차가 되기 전에 보험 계약을 해지한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보험 가입을 억지로 권유하는 이른바 ‘꺾기’(강압판매) 사례가 30%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같은 조사에서는 은행 창구에만 국한된 보험 판매 규정을 어기고 전화 등으로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아웃바운드’ 영업을 경험한 사례도 3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측은 “은행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실적 위주로 무리한 강압판매를 하거나 전문성 미비로 불완전 판매를 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업계는 보험업계가 신뢰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근거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 자본시장팀 관계자는 “이번에 보험업계가 내놓은 자료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라며 “강압판매나 불완전 판매 등은 방카슈랑스 도입 초기 감독당국의 집중단속으로 거의 없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험업계는 방카슈랑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고객 피해를 들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은행과의 파워게임에서 더 이상 밀릴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금융정책이 은행의 대형화를 유도하면서 금융산업의 중심축이 은행으로 쏠린 측면이 없지 않다. 일례로 2006년 말 기준 전체 금융기관 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그 비율은 25% 가량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보험업계의 위기의식을 괜한 제스처로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보험업계는 현재 은행과 보험간 역학구도에서 방카슈랑스를 확대 시행하게 되면 보험이 은행에 종속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고사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방카슈랑스 4단계 확대 시행의 핵심이 양대 보험업계의 주력상품인 보장성 보험과 자동차 보험이라는 점에서 더욱 예민해져 있다.

당초 방카슈랑스는 2003년 8월 연금보험 등 개인 저축성 보험을 대상으로 1단계 시행에 들어간 뒤 2005년 4월 보장성 보험과 자동차 보험으로 최종 확대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04년 보험업계가 2단계 확대 시행을 앞두고 연기를 강력 주장하면서 결국 3년 동안 시행이 유보됐던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3년 전과 똑같은 논리로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며 보험업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3년 유보에 동의했다가 지금 와서 딴 소리를 해 적잖이 당혹스럽다”며 “이럴 거면 애초에 동의나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에 대해 보험업계 전체가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회사에 따라 방카슈랑스의 덕을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판매 채널과 인력이 적은 중소형 보험사 입장에서는 은행 창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가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다”며 “실제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 영업 실적이 더 나아진 회사도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양대 보험협회 수장의 ‘공언’에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는 “보험설계사나 대리점의 불안감을 씻어내려는 내부단속 조치”라거나 “업계를 대표하는 일부 대형사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여론선점”이라는 등의 시각도 있다.

보험협회 측도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을 반대하는 것이 전체 업계의 통일된 의견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이와 관련,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설계사 조직이 잘 갖춰진 회사들은 조직 동요를 우려해 반대하지만 후발 회사나 소형 회사들은 판매 채널을 확대할 수 있어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방카슈랑스 시행에 따른 소비자 피해와 보험업 위축 등 각종 부작용 해소의 필요성은 업계 전체가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카슈랑스 확대 시행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은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안으로 두 번씩이나 휘둘릴 수는 없다는 결의도 느껴진다. 하지만 보험협회 역시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3년 전 여름을 달군 방카슈랑스 전쟁에서는 보험업계가 일정한 양보를 얻어냈다. 이번 2차대전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올까.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