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특별한 긴장 사태 없어도 올들어 배럴당 28% 올라미국·중국 등 수요 증가… 증산에 소극적인 OPEC도 상승 한 몫

지난달 7월 하순은 국내외 주식시장으로서는 초 호황국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서면서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였고, 미국에서는 다우지수가 마찬가지로 14,000선을 돌파하며 역시 사상최고치를 넘어섰으며, 중국에서는 상하이 주가지수가 사상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터.

그런데 주식시장의 열기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상승하던 주가와 마찬가지로 국제유가 역시 사상최고치 기록을 돌파하였다.

지난 7월31일, 뉴욕 상품거래소(NYMEX)에서 9월물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의 가격이 배럴당 78.21달러에 마감해 종가 기준으로 1983년 이래 최고치를 넘어섰다.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사상 최고가격은 작년 7월14일 장중에 기록된 배럴당 78.40 달러였다.

당시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투를 벌이면서 중동의 원유 수급이 불안해질 것으로 우려되었고, 그 때문에 유가가 크게 오른 셈인데,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재차 국제 유가가 사상최고치 기록을 넘겼다.

이라크 루마일라 남부 지역의 정유시설. 이라크는 매일 1만 5,000~1만 8,000배럴의 원유 증산을 시작했다. <루마일라= AFP 연합뉴스>

더구나 올해는 중동 지역에서 돌발적인 전쟁 같은 긴장사태가 발발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연일 오르고 있어 상황은 더 좋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는 원유가격이 수개월 안으로 배럴당 100 달러 수준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 회사의 원유 담당 애널리스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 이상 원유 가격이 배럴당 95달러까지 오를 것이고, 거기에다 재고 감소까지 겹친다면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으며, CIBC월드마켓의 애널리스트도 이르면 내년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굳이 전문가들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국제 원유가격의 상승세는 놀랍다. 올해는 절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국제 원유가격은 1월 이후 벌써 28%나 상승했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은 혜택을 입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일 따름이다. 하지만 유가가 오르면 물가를 자극하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니 모든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결과가 된다.

주가의 상승과 유가의 상승이 서로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유가의 상승이 가져다주는 악영향이 더 크다.

그렇다면 왜 국제 유가는 최근에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일까? 유가 상승의 이유와 향후 전망을 살펴본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첫 번째의 이유로는 역시 수요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기가 꾸준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어서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국제 유가가 오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거기에다 유로 존 등 선진국의 경기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더구나 세계 원자재의 블랙 홀로 불리는 중국의 경제 역시 ‘두 자리 숫자’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수요 증가에 따른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뉴욕 거래소에서 원유상들이 열띤 구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 신화통신 연합뉴스>

그런데,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잡고 유가가 안정되려면 원유의 공급도 덩달아 증가하여야지만, 정작 공급을 주도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는 원유의 증산에 소극적이다. 석유수출국기구는 원유 공급이 부족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만 원유 증산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미국 정유시설 가동률 낮아져

둘째로, 미국의 정유시설이 상당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유가를 끌어올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허리케인 때문에 멕시코 만 지역에 몰려있는 미국의 정유시설이 타격을 받고 그로 인해 유가가 들먹인다.

2005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로 일부 정유 시설이 파괴되자 수급 불안을 이유로 국제 유가가 크게 치솟았던 것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대규모 허리케인이 몰려온다는 소식만 들려도 어김없이 국제 유가가 들먹이곤 하였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내 정유시설 중의 3분의 1이 각종 결함으로 인하여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

아직 허리케인이 불어 닥치지도 않았는데, 정유 시설이 스스로 가동을 줄이고 있으니 석유 제품의 수급이 불안해지고 그게 고스란히 국제 유가의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 번째로, 달러화가 유로화나 혹은 파운드 등 주요 통화에 대하여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국제 거래에서 원유 대금은 전액 달러로만 결제된다.

그런데 최근 달러화의 가치는 유로화에 대하여서는 1유로=1.38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추락하였고, 파운드에 대하여서도 1파운드=2.06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26년 이래 최저치로 주저앉은 바 있다.

그러니 원유의 가격이 달러 기준으로 상승하더라도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원유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득이 줄어드는 셈. 석유생산국기구가 원유 증산에 소극적인 이유가 또 여기에 있는 것이다.

■ 달러 약세·투기 세력 발호도 가격 상승 부채질

네 번째로, 지정학적 불안감과 이를 노린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의 발호도 유가 상승의 이유가 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투가 국제 유가를 크게 끌어올렸듯 중동 등 민감한 지역에서 국지적인 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즉각 유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나이지리아는 대선 이후 정국이 불안하며, 이라크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자칫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거기에다 현재 핵무기를 둘러싸고 미국과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는 이란과의 긴장 상태가 높아질수록 국제 유가의 상승세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아울러 헤지 펀드 등 투기세력이 국제 원유선물시장에 뛰어들어서 가격의 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헤지 펀드는 주식이나 채권 등은 물론이고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원자재 혹은 원유 등 소위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건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헤지 펀드의 입장으로서는 수급 불안감에다 지정학적 위기감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유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챙길 수 있을 터. 특히 투기적인 세력이 동참할수록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그렇다면 온통 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 밖에는 없을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비하여 강도가 낮긴 하지만, 유가가 하락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본격적인 석유 제품의 성수기인 미국의 소위 드라이빙 시즌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 국민들이 휴가철에 차를 많이 몰기 때문에 6월초부터 대략 8월말까지를 드라이빙 시즌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이 시기에 휘발유 등 석유제품의 소비 증가가 예상되므로 유가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제 8월에 접어들었으므로 소비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졌다. 국제 유가가 조금씩 안정될 가능성이 한 가닥 살아있는 셈.

거기에다 유가가 너무 급등한다면 석유수출국기구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국제 유가가 과다하게 오른다면 선진국들은 원유 소비를 줄이기 위하여 하이브리드카를 비롯,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이는 석유생산국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다.

결국 석유 생산국들이 스스로 생산을 조절하여 유가가 너무 크게 오르는 상황은 피하려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될지 여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 유가는 아무래도 상승할 공산이 높다고 보는 편이 현명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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