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유선방송사업자(SO) 드라마·스포츠 등 일부 인기 프로… 고가형 패키지로 잦은 이동 편성공정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판결… SO 업계는 '이중규제 조치' 강력 반발

국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위원회가 서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케이블TV 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ㆍ지역케이블방송국)의 영업 행위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가 사태의 발단이다.

공정위는 지난 7월 25일 전원회의를 개최해 단체계약을 일방적으로 중지한 티브로드 계열 15개 SO에 2억1,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일방적으로 채널 편성을 변경한 티브로드 계열 8개 SO 및 CJ 계열 3개 SO에 대해서는 시정 명령을 의결했다고 지난달 29일 공식 발표했다.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티브로드 계열 15개 SO들은 자신들이 독점적으로 종합유선방송권을 가진 지역에서 저가 공급하던 단체계약 상품(방송프로그램)의 신규 계약과 계약 갱신을 2005년 12월부터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티브로드 측은 경쟁 업체가 있는 부산 서구, 사하구 등의 시장에서는 단체계약 상품의 공급을 유지했다.

공정위는 티브로드의 단체계약 중단이 수신료 증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며, 아울러 가입자들이 수신료와 설치비용이 비싼 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사업자)로 전환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이용해 고가의 개별상품으로 가입 유도를 한 것으로 ‘독점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된다고 못박았다.

케이블TV 방송국(SO)의 주조정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공정위는 단체계약자의 25%가 개별계약으로 바꿀 경우 동일 매출 수준을 유지하고, 50%가 전환할 때는 매출 2배 증가의 효과가 있다고 밝힌 티브로드 내부 분석자료까지 제시했다.

SO의 일방적인 방송프로그램 편성변경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가입자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티브로드와 CJ 계열의 11개 SO는 2006년 4월 저가형 상품에 포함돼 있던 스포츠, 드라마 등 시청률이 높은 인기 채널을 고가형 상품에 편성함으로써 저가형 상품의 품질을 인위적으로 저하시켰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분석에 따르면 티브로드 계열 SO의 채널 편성변경 이후 기본형 상품의 시청점유율은 최대 67%까지 떨어진 지역도 있었다. CJ 계열 SO의 경우도 최대 24.2%나 시청점유율이 하락했다.

즉 볼 게 없다고 생각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것이다.

사실 SO의 임의적이고 잦은 채널 편성변경에 대한 시청자 불만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해묵은 문제다. 지난해 방송위원회가 발간한 2005년도 시청자불만처리 보고서에도 이런 사실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 "기본형 패키지엔 볼 게 없다" 시청자들 불만

이 보고서에 따르면 SO에 대한 불만 건수는 2004년 대비 무려 69%나 증가했다. 특히 불만 내용을 유형별로 보면 채널 편성 관련 불만이 1,004건(49%)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요금 관련으로 414건(20%)에 달했다. 채널 편성 불만은 예전에는 요금 불만보다 적었으나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발간된 2006년도 시청자불만처리보고서에서도 이런 흐름이 대체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SO 관련 불만 중에 채널 편성 불만이 1,035건(4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요금 불만이 600건(25%)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특히 일부 사업자의 경우 스포츠, 드라마 등 일부 장르 채널을 저가형 상품 패키지에서 고가형 상품으로 이동 편성하면서 이에 대한 시청자 불만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케이블TV 시청자들이 흔히 털어놓는 불만은 이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본형은 볼 게 별로 없고 고급형으로 바꾸자니 돈이 들고….” “늘 보던 채널 번호로 맞췄는데 엉뚱한 채널이 나와 황당했다. 리모컨으로 몇 차례나 훑어본 뒤에야 원하던 채널을 찾을 수 있었다.”

현재 케이블TV 채널 편성은 SO와 PP(방송콘텐츠공급자) 간의 수신 계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법적으로 채널 편성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채널을 바꿔 편성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SO들의 일방적이고 잦은 채널 편성 변경이 이뤄진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만만찮다. SO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채널 숫자가 50여개인 반면 PP는 220여개나 되는 상황에서 채널 편성이 고정화된다면 한 번 배제된 PP들은 진입조차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PP들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채널 편성이 시장원리에 맞게 자유로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채널 숫자와 PP 숫자 간의 상당한 간극은 또 다른 부작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채널 편성권을 가져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SO들이 PP들을 상대로 불공정한 거래를 강요할 여지가 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2005년 한 PP업체 대표가 SO업체들이 PP업체들에게 행하고 있는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한 하소연을 담은 진정서를 여당 국회의원실에 접수시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진정서에서는 SO들이 채널 공급 계약을 조건으로 PP들에게 이른바 런칭비를 포함해 광고비 지원, 마케팅 협찬 등 갖가지 ‘가욋돈’을 요구하고 있는 실태가 적나라하게 언급됐었다.

진정서 내용은 얼마 뒤 공정위의 실태 조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런칭비를 강요하거나 송출장비 구입 비용을 제공받은 SO와 계약 기간 중에 일방적으로 채널 편성을 변경한 SO 등이 적발됐던 것.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관행이 이제는 많이 근절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송위의 한 관계자도 “SO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따른 수신료 후려치기, 런칭비 강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규제 조치를 시행해 오고 있어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한편 방송위는 1일 내놓은 ‘공정거래위원회의 SO 시정명령 등에 대한 방송위원회 의견’에서 최근 공정위 조치가 방송위의 감독권을 침해했다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방송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의 일반적인 시정명령 권한을 가진 공정위가 시청점유율과 요금 기준만을 근거로 SO의 채널편성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표현의 자유 및 방송이 가지는 문화적 특성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SO 업계의 반발도 표면화하고 있다. 특히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오지철 회장은 1일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당초 정책적으로 지역별 사업권을 부여한 케이블TV 사업은 독점이 아니다”라면서 “또한 재허가 추천 심사 등 방송위의 규제를 받고 있어 이번 공정위 조치는 이중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SO들이 개별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SO업계가 이번 공정위 조치에 대해 일전을 불사하리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래저래 시청자들만 더 혼란스럽게 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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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