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올림픽 '이매진 컵' 서울대회서 한국 대표 첫 최종 결선 진출우수한 젊은 개발자 많지만 직장에선 지옥 같은 노동환경 시달려

전세계 젊은이들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기술을 겨루는 ‘소프트웨어 올림픽’이 지난 5일 서울에서 개막됐다.

‘그런 대회도 있나’ 싶겠지만, 이번 서울대회가 벌써 다섯 번째다. 정식 명칭은 ‘이매진컵 2007(Imagine Cup 2007)’. 서울 워커힐호텔과 W호텔에서 엿새동안 세계 56개국 350여명의 대학생들이 첨단 소프트웨어 개발기술을 겨뤘다.

이매진컵은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최하는 대회다.

특정 기업이 개최하는 대회이니 만큼 국제적 공인을 받고 있는 대회는 아니지만, 이 대회에 참가하려면 각국의 예선을 통과해야 하고 그렇게 예선을 통과한 각국 대표들이 본선을 치르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본선대회를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개최하고 있으며 해당 국가의 정부와 공동주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올림픽’이라는 애칭까지 듣고 있는 배경이다.

여하튼 2003년부터 세계 16세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돼 온 이매진컵이 서울에서 다섯 번째 대회를 열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대회에는 56개국 대표 학생들 350여명이 참가했다.

세계에서 기자단만 300여명이 참여한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학생들은 소프트웨어 설계, 임베디드, 웹 개발, 단편영화, 사진 등 총 9개 경진 부문으로 나눠 실력을 겨뤘다.

첨단 기술의 경연장이며, 내일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기량을 다투는 자리여서 이 대회의 유치전도 치열한데, 지난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어렵게 대회 유치를 일궈냈다. 정보화 시대이자 정보화 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못지않은 대회의 유치인 셈이다.

■ 빛 - 국내대표 '엔샵605' 첫 결선 진출

‘기술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라’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표팀이 최종 결선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5회대회인 서울대회까지 우리나라 대표팀이 결선에 오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결선은커녕 16강의 벽을 한번도 넘지 못했는데, 드디어 서울대회에서 정보강국의 위용을 마침내 드러낸 셈이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세종대 컴퓨터동아리 ‘엔샵605(EN#605)’. 세종대학교 임찬규, 임병수, 민경훈, 정지현 4명의 학생들로 이뤄진 ‘엔샵605’팀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용 장갑 ‘핑거코드’를 들고 이번 본선대회 소프트웨어 설계 부문에 참가했다.

‘이매진 컵’서울대회서 최종 결선에 오른 한국 대표‘엔샵605’
'이매진 컵'서울대회서 최종 결선에 오른 한국 대표'엔샵605'

핑거코드는 음성신호를 문자로, 문자신호를 진동으로 변환해 손가락 윗부분을 진동시켜 시청각 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소프트웨어(SW)이자 기기다.

엔샵605팀은 지난 2월 국내 50개팀 200여명이 참가한 ‘이매진컵 2007’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핑거코드로 1위를 차지했고, 지난 6월 한국 대표팀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과 직접 대면하는 사진이 각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해당기기의 제작단가가 8만원에 불과해 실용성 측면에서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핑거코드는 이번 대회에서 두 번의 조별 예선을 거쳐 12강에 올라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브라질, 중국, 러시아 팀 등을 제치고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최종 결선에 진출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르비아,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자메이카, 태국이다.

좋은 성적을 거둔 것과 함께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를 통해 각국 젊은이들에게 정보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성과도 거뒀다.

이번 대회를 참관한 유네스코 정보커뮤니케이션 부문 압둘 와히드 칸(Abdul Waheed Khan) 사무총장보(Assistant Director-General)는 “참가자들이 보여준 열정, 기술력, 그리고 풍부한 IT지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은 IT 관련 기술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교육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발전을 이룩해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그림자 - 어느 SW개발자의 사직서

세계 젊은이들과 겨뤄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젊은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나라. 하지만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얼마 전 ‘IT맨, 내가 사직서를 쓴 이유’라는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주인공은 2000년초 ‘큰 뜻’을 품고 개발자로 취업했지만, 7년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왜 사직서를 썼는지를 블로그에 올렸고 이 글이 엄청난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가 사직을 하게 된 이유, 그것은 ‘살인적인 노동환경’이었으며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였다.

날밤 새우며 개발을 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던 입사 초기의 생각은 다시는 이땅에서 개발자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탈출하고 싶은 지옥’이었다.

‘월화수목 금금금’의 세계, 야근과 철야의 연속. 그러면서도 수당조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하는 개발자. 대기업의 무리한 요구와 이를 군말없이 수용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직원. 그는 결국 사직서를 쓰면서 ‘개발자는 싸게 사용하고 버리면 되는 도구’의 삶을 벗어던진 것이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이 IT맨의 사직서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IT강국, 정보화강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있다.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엔샵605팀이 학교를 졸업해 개발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과연 그들의 미래는 어떨까.

‘국제기능올림픽’이라는 게 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 말 그대로 기능을 겨루는 국제대회다. 우리나라가 늘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록을 뒤져보니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14연패를 했다.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그들의 ‘성적’에만 주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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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 ssanba@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