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견 상향 조정 후 주가 오히려 풀 죽어… '사전유출'이냐 '뒷북 보고서'냐 의혹의 눈길

여의도 증권가 빌딩 숲.
‘증권사 보고서 과연 믿을 만한가?’

웬만큼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치고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증권사 보고서의 내용이 주식시장의 실제 움직임과 큰 괴리를 나타내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몇 언론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기업분석 보고서가 사전 유출되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증권가뿐 아니라 투자자들 사이에 또다시 큰 파문이 일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투자자들이 해당 종목의 매매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가늠자 역할을 한다. 때문에 보고서가 미리 특정인에게 유출된다면 주식시장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교란하는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파문의 진원지는 금융정보제공업체 Fn가이드. 이 업체는 올해 증권사들의 기업분석 보고서와 해당 기업의 주가 흐름을 조사한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증권사 보고서가 투자 의견을 상향 조정한 104개 종목의 주가는 보고서가 발표되기 10일 전부터 발표일까지 평균 7.18% 상승했으나 발표 후에는 10일 동안 상승률이 1.92%에 그쳐 오름세가 크게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규로 매수 추천한 94개 종목 주가의 경우도 발표 10일 전부터 발표일까지 8.29% 올랐으나 이후 10일 동안에는 오히려 –1.36%의 내림세로 돌아섰다.

즉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사라고 권유한 종목의 주가가 정작 보고서 발표를 기점으로 꺾여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 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일부 세력이 미리 증권사 보고서의 정보를 입수해 선수를 쳤을 수 있다는 추측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보고서 사전유출 의혹에 대해 Fn가이드측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한 관계자는 “보고서 발표 시점과 주가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드러난 것은 맞지만, 그 모두를 사전유출 의혹으로 몰고 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아닌가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Fn가이드측은 모 통신사 기자의 요청에 따라 보고서 발표 시점과 의견 등 두 가지 데이터를 정리해 넘겼을 뿐이며, 보도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여의도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시황판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증권가에서는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사전유출 의혹 제기를 어떻게 바라볼까. 물론 “그런 일이 횡행할 리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주가가 보고서 발표 이후 꺾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애널리스트의 ‘능력’ 탓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와 관련, 한 증시 전문가는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특정 종목의 주가가 이미 오른 뒤에, 그 종목 주가가 오른다며 ‘뒷북 보고서’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며 “때문에 보고서 발표 이후 주가 움직임이 둔화하는 것은 그런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애널리스트 보고서 내용의 사전유출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통제 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해 정보가 흘러나갈 틈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감독원 증권업감독 규정 제4-7조는 ‘조사분석자료의 작성 및 공표 등’이라는 제목으로 증권사 보고서에 관한 몇 가지 규제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증권사가 보고서를 일반인에게 공표할 경우에는 조사분석자료의 주요 내용이 내부적으로 사실상 확정된 시점부터 공표 후 24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해당 종목을 자체적으로 매매(자기매매)하지 못하게 돼 있다.

또한 증권사는 조사분석자료를 일반인에게 공표하기 전에 주된 내용을 제3자에게 먼저 제공한 경우, 그 사실과 함께 최초의 제공 시점을 함께 공표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을 증권업계가 반드시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이 증권사의 조사분석업무 실태점검을 한 결과, 분석 대상 법인과의 이해관계를 고지하지 않거나 제3자에 대한 자료 사전제공과 관련한 관리가 미흡한 사례가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보고서 발표 후 24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자기매매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는 내부통제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으며 다른 업체들도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다만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외부에 사전 유출될 개연성에 대해서는 전혀 없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며 “개인의 이메일 감시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하면 정보 유출을 보다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인권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어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설령 보고서의 사전유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보고서 내용 자체가 애널리스트 개인에 의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은밀하게 제3자에게 제공한다면 이를 차단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실제 증권가에는 일부 애널리스트가 귀띔한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투자자들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와 관련, 40대 초반의 한 주식투자자는 “두어 달 전 평소 친밀하게 지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자신이 곧 보고서를 낼 종목의 매수를 권유해 사뒀는데 몇 일 뒤 되팔아 수천만 원의 단기 차익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수 년 사이 펀드 열풍이 불면서 기관투자자의 입김이 세진 것도 보고서 정보의 사전유출 가능성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즉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에게 고급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의 공식, 비공식적인 만남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권업계와 감독당국의 애널리스트 관리감독 체계가 대폭 강화되지 않으면 은밀한 정보거래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미국은 엔론사태를 겪은 이후 모든 애널리스트의 자격심사를 새로 하는 등 철저하게 윤리 재무장을 했다”며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애널리스트 윤리교육은 그저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자본시장통합 시대가 본격화하면 증권사 조사분석자료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요구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게 된다”며 “앞으로는 애널리스트 양성과 등록 과정 등에 윤리 덕목을 평가하는 시험이 필수적인 요소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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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