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액 266조 원 시대에 1억 원 미만 소형펀드 800여 개… 운용사들 사실상 방치

바야흐로 펀드 전성시대다. 간접투자가 개인투자자들의 투자방식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으면서 펀드는 주식시장을 비롯한 자산운용시장의 중심축이 됐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7일 기준 국내에 설정된 전체 펀드의 설정잔액은 무려 266조원 대에 달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사태의 충격파를 한국 증시가 무난하게 견뎌내고 있는 것도 사실상 펀드의 힘이 뒷받침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중자금이 펀드로 몰리면서 투자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 초대형 펀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투신운용의 ‘한국삼성그룹적립식주식1’과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의 ‘봉쥬르차이나주식2’는 설정잔액이 2조원을 넘는 대표적인 골리앗 펀드다. 또한 그 뒤를 잇는 1조원 대의 펀드도 무려 15개나 된다.

자산운용협회 집계를 보면 9월 7일 현재 설정액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펀드 숫자는 모두 484개. 이들 펀드의 설정 잔액은 총 162조 9,52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펀드 중에는 대형, 초대형만 있을까. 물론 중형도 있고 소형도 있다. 9월 7일 현재 설정액 50억원 미만의 소형 펀드 숫자는 무려 3,699개나 되며 설정 잔액은 6조원이 넘는다. 이 같은 숫자는 전체 펀드 8,700여개의 40%를 넘는 수준이다.

놀라운 것은 설정액이 1억원도 안 되는 ‘초미니 펀드’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9월 13일 자산운용협회 전자공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억원 미만 펀드 숫자는 무려 800개가 넘었다. 그 안에는 1,000만원 미만 펀드 330여개가 포함돼 있다. 심지어 설정액이 100만원도 안 되는 펀드도 수십 개에 달했다.

펀드는 말 그대로 다수로부터 돈을 끌어 모아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룬 뒤 적재적소에 투자해 돈을 불려나가는 투자 방식이다. 물론 펀드 규모가 수익률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펀드 규모가 클수록 포트폴리오 구성이 용이해 수익률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수백만~수천만 원짜리 펀드는 어떤 연유로 ‘펀드답지 않은’ 펀드의 모양새를 갖고 있을까. 또한 그 정도 규모의 펀드를 굴려 수익을 낼 수는 있을까.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초미니 펀드가 생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펀드 설정 기간이 오래 돼 상당수 가입자들이 환매를 해가는 바람에 규모가 축소됐거나 또는 설정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아직 가입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경우다.

자산운용협회의 한 관계자는 “설정한 지 오래된 펀드의 경우 다수의 투자자들이 환매를 하면 자연스럽게 규모가 줄어든다”며 “하지만 소수의 투자자들이라도 남아 있으면 청산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펀드의 설정액이 1개월 동안 100억원을 밑돌 경우 펀드를 해지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투자자와 연락이 안 되거나 투자자가 항의를 하는 등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설정 기간이 제법 지나 소액 펀드로 전락한 경우는 사실상 운용 대상에서 제외된 채 방치된다는 점이다.

한국펀드평가 김춘화 과장은 “소액 펀드는 포트폴리오 구성조차 어렵기 때문에 거의 관리가 되지 않는다”며 “전문운용 인력이 대형 운용사라도 20여명 안팎에 불과한 터라 소액 펀드까지 챙길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직접 자산을 굴리는 운용 전문가들도 이런 문제점을 인정한다. A투신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펀드 사이즈가 작아지면 실질적인 운용을 못 하는 게 사실”이라며 “가령 1억원 정도 되는 펀드라 하더라도 요즘 잘 나가는 포스코 주식 200주도 사기 어려운데 어떻게 운용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턱없이 규모가 적은 데다 운용 대상에서 배제되다시피 한 펀드가 수익을 낼 리는 만무하다. 대부분 미니 펀드는 수익률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설정 기간이 1~3년 가량 된 ‘청년펀드’ 중에도 미니 펀드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이런 펀드의 경우는 한창 돈을 끌어 모을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설정 기간 탓을 할 수도 없다.

이와 관련,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소액 펀드가 넘쳐 나는 것은 우리나라 펀드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펀드 개수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 비슷비슷한 펀드가 난립하는 것이 펀드 규모 대형화를 막는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상당수 운용 전문가들은 펀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기대수익률을 달성하려면 규모가 최소 1,000억원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5,000억원을 하한선으로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많은 투자자들이 펀드 열풍에 휩싸여 일단 가입하는 데만 신경을 쓸 뿐 자신이 투자한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펀드 판매회사가 투자자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펀드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관행도 한 몫을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펀드시장 풍토에서는 투자자 자신이 눈을 크게 뜨고 옥석을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펀드 전문가는 “자신이 가입한 펀드 현황을 꼼꼼히 점검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도 소형에 머무르고 있다면 과감히 다른 펀드로 갈아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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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