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글쎄요" 장기적으로 "긍정적"삼성·LG·SK " 정해진 것 없다" 현대차는 철도등 SOC 투자에 관심국내 건설·조선업계는 상당한 호재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참석한 최태원 SK회장이 3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최한 옥류관 오찬장에서 행사가 시작되기 전 구본무 LG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 등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역사적인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 확대가 예고되면서 국내 재계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재계는 한목소리로 두 정상이 합의 서명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ㆍ4선언)을 환영하는 등 어느 때보다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서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총수들은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동행했다. 이들은 3일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북측 경제대표단과 대기업 대표 간담회를 갖고 경협확대에 대해 서로의 의중을 털어놓았다.

이 자리에서 북측은 경협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았다. 현재 임가공산업에 국한되다시피 한 경협사업을 보다 실질적인 투자협력 차원으로 이끌어가자는 것.

특히 대표단 중 한 인사는 “통 큰 사업 추진을 바란다”고 말해,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남측 재계의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넘어선 속마음을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런 분석은 10ㆍ4선언을 통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경제분야의 합의를 담은 10ㆍ4선언 5항은 ▲기반시설 확충 및 자원개발 적극 추진 ▲해주지역 일대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 조속 완공 및 2단계 개발 착수 ▲통행 통신 통관 등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 완비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ㆍ보수 추진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새롭고 굵직굵직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큰 폭의 경협 틀이 마련되자 재계는 향후 대북사업의 활성화 가능성을 보다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그 동안 대북투자를 막아 왔던 상당수 장애물이 한꺼번에 제거됨으로써 진출 문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북측 기반시설 확충, 자원개발 추진, 해주지역 경제특구 건설, 남포 조선협력단지 조성, 경의선 화물철도 운행, 3통 애로 해소를 위한 제도완비 등 구체적 현안들이 합의됨에 따라 향후 남북간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여건이 개선되고 실질적인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남북경협과 관련해 합의된 다양한 실험적 프로젝트가 소기의 성과를 거둬 향후 실질적인 남북경협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희망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이번 남북 경협확대에 따라 국내 재계의 대북 진출은 가속도를 낼 수 있을까. 또 어떤 기업에게 어떤 사업 기회가 제공될까. 아직 선언문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데다 합의의 상대가 북한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재계는 이미 물밑 주판알 튕기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가장 관심을 끄는 기업은 아무래도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정상회담을 몇일 앞두고 “남북경협은 사업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미묘한 언급을 했던 터라, 삼성의 향후 대북 행보는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삼성측은 대북사업과 관련해 주변에서 제기하는 이런저런 추측들을 대부분 부인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현재로서는 아무 계획도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3일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특별수행원들이 3대혁명전시관 중공업관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최근 이 회장의 발언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한 원론적인 말”이라며 “그룹 차원에서 당장 남북경협 사업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의 대북사업은 임가공 분야를 중심으로 연간 생산액이 200만 달러에 그칠 만큼 미미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삼성의 경영 스타일을 감안하면 새로운 대북사업의 밑그림이 금세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특별 수행원으로 참여한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언급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4일 평화자동차 등 주요시설을 둘러본 뒤 “북한이 개발이 덜 됐다지만 발상만 잘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SK는 대북사업에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로선 SK 역시 뚜렷한 사업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재계에선 최 회장의 발언이 분위기를 감안한 ‘립서비스’ 차원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 관계자도 “기본적으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는 사업을 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게 그룹 입장”이라며 “게다가 우리는 현재 대북사업이 전무한 상황이어서 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무엇부터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을 감안하면 LG그룹 역시 대북 투자를 확대할 만한 유인이 별로 없다는 관측이다. 다만 임가공 형태로 가동 중인 브라운관 공장 등 전자부문의 일부 임가공 사업을 확대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4대 재벌 가운데 현대차그룹 정도가 이번 남북경협 확대를 활용할 포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인 로템과 글로비스 등을 앞세워 철도연결, 물류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대차의 대북 투자가 이뤄지면 기존 남북경협의 주축 사업자인 현대그룹과 함께 범 현대가(家)의 협력 여부도 관심을 끌 전망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남북경협 확대가 국내 재계의 본격적인 대북 진출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대대적인 기반시설 확충과 조선협력단지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국내 건설 및 조선업계에는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진전된 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 보완 등의 합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다만 재벌들이 본격 진출하는 시점은 투자 여건이 보다 무르익은 이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첫 번째 관문에 이어 두 번째 관문이 열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남북경협의 빗장이 활짝 열리기까지는 아직 적지 않은 관문이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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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