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의 귀재… 업계 2위까지 올린 멀티플렉스 경영권 넘겨 인생의 쓴잔 토종 커피전문점 인수로 외국계와 맞짱… 4년만에 대박 신화

대학 시절 다방에서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방은 스타벅스와 커피빈 같은 외국계 커피전문점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토종 커피전문점으로 외국계와 당당히 맞서고 있는 곳이 바로 ‘할리스커피’(이하 할리스)다.

이곳을 이끄는 이성수 대표는 2002년 프리머스 시네마라는 멀티플렉스(복합영화관)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수도권에만 집중된 멀티플렉스를 지방에서 시작한 뒤 수도권으로 확대해 업계 2위까지 성장시켰다. 극장과 다방이 찰떡 궁합인 점에 착안해 커피전문점을 인수했고, 그때부터 할리스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성수 대표는 두산그룹 재직 시절 정수연 부사장과 함께 KFC를 국내에 들여온 장본인이다. 프랜차이즈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에 KFC를 국내에 들여와 성공적으로 론칭시켰다.

1984년 종로 1호점을 시작으로 300여 개의 KFC 매장을 만들었고, 이런 성과 덕분에 39세에 두산 역사상 오너 패밀리를 제외하고는 최연소 이사가 되는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잘 나가던 그는 영화 산업에 도전한다. 그것이 프리머스 시네마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프리머스나 KFC나 본질은 프랜차이즈입니다. 두산에서는 비슷한 일을 할만큼 했습니다. 거기 있으면 안정적이긴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곳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보장된 자리를 차 버리고 허허벌판으로 나가느냐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뭔가 짜릿한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프리머스 시네마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리머스는 영화인들의 염원이 담긴 뜻 깊은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잘 나가던 프리머스는 대기업으로 인수되는 아픔을 겪는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온갖 곳을 뛰어다니며 경영권을 지키려 무던히도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대표에게는 그때가 인생 최대의 고비였다. 몇 년간 공을 들인 사업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무력감에 살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 문득 영화 대신 극장 안에 들어와 있는 할리스를 키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타벅스, 커피빈 등 외국계 커피전문점이 국내 시장을 휩쓸고 있는 터에 이들과 승부를 겨루고 싶은 승부사 기질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할리스는 2003년 인수 당시만 해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소비자들 사이에 인지도가 떨어지는 데다 본사의 운영시스템 역시 문제 투성이였다. 그런 할리스를 이 대표가 확 바꿔놓았다.

이 대표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고수다. KFC를 비롯해 프리머스와 할리스 등을 모두 성공시켰다. 이들의 공통점은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프랜차이즈라는 것이다. 그는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그 핵심을 알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점주의 만족이다. 점주를 만족시키면 본사는 저절로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프랜차이즈는 반대로 행동한다. 온갖 구실을 붙여 점주로부터 돈을 거두어 본사만 배를 불린다.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는 차별화에도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다. 덩치 큰 경쟁자와 직접 맞붙기 보다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 든다. 프리머스를 운영할 때도 경쟁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지방부터 규모를 키워 단숨에 2위가 되었다.

할리스도 그렇다. 외국계 회사가 시장성만을 따지면서 큰 도시 위주로 점포를 늘릴 때 그는 중소도시를 집중 공략해서 규모를 키웠다. 프랜차이즈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일정 숫자 이상이 되어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스의 큰 강점 중 하나는 가격 우위다. 외국 브랜드는 로열티 때문에 가격상 할리스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명한 전략 덕분에 할리스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커피를 제공한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었고 이후 2005년부터는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2006년 89개 매장에서 매출 350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매장 숫자 130~150개에 매출 470억원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용이 날개를 단 기세다.

또한 본사의 적극적 마케팅과 교육 덕분에 점주와의 신뢰도 높아졌고 그 결과 산업자원부가 후원하는 ‘고객서비스만족대상’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 수상했다. 짧은 기간에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임파워먼트’(구성원에 대한 권한부여)를 무척 강조하며 또한 실천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회사 안에서는 그런 자율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직은 늘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사장인 제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조직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담당자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해결 방법도 담당자가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분위기만 잡아주면 됩니다. 제가 할 일은 책임을 져주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조직은 힘차게 돌아갑니다.”

이 대표가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것은 예전 상사였던 한승희 사장의 영향이다. 그의 말이다. “그 분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신 부하직원이 그것을 받도록 했습니다. 사장이 할 일은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면 된다는 겁니다. 저도 이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저 직원을 섬기는 사람이지요. 일은 직원들이 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별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쉬운 말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는 자신만 각광을 받으려는 사장으로 넘쳐 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런 대접도 못 받고 죽어라 고생을 하는 직원들의 한숨이 숨어 있다. 그런 조직에서 무슨 에너지가 나오겠는가?

개인이나 조직은 늘 성장해야 한다. 안주는 바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안정되려는 지금,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2007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1호점을 냈는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2호점과 3호점도 준비하고 있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중국 진출을 위한 협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런 할리스의 해외진출이 의미 있는 것은 원두 생산만 제외하고는 원두의 가공과 물류, 에스프레소 커피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내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곧 한국이 커피 소비국에서 커피 수출국으로 변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표는 호감 가는 인상의 소유자다.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이다. 막힘이 없고 자유로워 보인다. 술과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보다 직원을 생각하고, 본사보다는 점주들의 이익을 생각하며,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에서 역시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할리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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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