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의 총아로 떠오른 지 3년 만에 자본잠식 위기애초부터 수익모델 오판…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이 화 불러

“벌써 수 년째 위기다, 위기다 외쳤지만 사정이 달라진 게 없어요.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른바 ‘손 안의 TV’로 불리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방송통신 융합의 총아로 떠오른 지 불과 3년 만에 침몰 위기에 내몰려 있다.

2005년 방송 서비스를 개시한 DMB는 지난 9월 기준 가입자가 8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유료 방송인 위성DMB의 가입자가 127만 명, 무료 방송인 지상파DMB의 단말기 보급 대수가 724만 대다.

보급 대수에 걸맞게 요즘 길거리나 버스, 지하철 등지에서는 전용 단말기로 방송을 시청하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자가용 승용차에 단말기를 장착하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DMB를 즐기는 운전자들도 꽤 많이 늘었다.

시청인구만 놓고 보면 DMB는 초창기를 벗어나 이제 본격적인 순항에 나선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 터에 관련 업계가 못 살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왜일까.

■ 위성DMB, 유료에다 킬러 콘텐츠 부재

위성DMB 사업자인 TU미디어는 2005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한 뒤 전국망 구축 등 시설투자와 콘텐츠 확보 비용으로 지금까지 3,700억 원 이상의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 같은 천문학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TU미디어는 오히려 깊은 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회사측에 따르면 TU미디어는 2007년 예상적자 750억 원을 포함해 올 연말이면 누적적자가 2,7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TU미디어의 총 납입 자본금이 2,680억여 원인 점을 감안하면 자본잠식 위기가 코앞에 닥친 셈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최대주주인 SK텔레콤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수 차례 대규모 증자를 했지만 밑 빠진 독마냥 돈이 새나가기만 하는 DMB사업을 더 이상 존속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11월 하순 SK텔레콤 일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DMB사업 포기설’이 퍼져 나와 TU미디어 측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단순한 검토설 수준으로 봉합되기는 했지만 사업 포기 가능성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위성DMB 사업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은 역시 막대한 투자비용에 비해 수입이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TU미디어는 서비스 첫해인 2005년 100만 가입자 달성을 자신했지만 2년 반이 지나도록 130만 언저리에 그치고 있다.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최소 250만 가입자는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위성DMB 가입률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로 지상파DMB와 달리 유료 방송인 데다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런 점을 잘 아는 TU미디어도 그 동안 가입자 확보를 위한 핵심 콘텐츠인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재송신을 당국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방송위원회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에야 빗장을 풀어줬다.

TU미디어 입장에서는 숙원이 풀렸지만 꼭 반가운 분위기만도 아니다. 이번 방송위 결정이 때늦은 ‘사후약방문’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볼 게 별로 없는 방송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마당에 뒤늦은 지상파 재송신이 위성DMB 가입자 확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지상파DMB, 월 광고수입 고작 1억원

위성DMB와의 시청자 확보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지상파DMB는 사정이 좀 나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6개 사업자 가운데 KBS, MBC, SBS등 3개 지상파 방송사 소속의 DMB사업부는 그나마 기댈 언덕이라도 있지만, 나머지 3개 독립사업자는 내년이면 자본잠식 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DMB특별위원회 등에 따르면 평균 자본금 300억~360억 원 수준으로 출범한 지상파DMB 3개 독립사업자는 대체로 200억 원 가량을 투자한 후 나머지 돈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돈을 벌기는커녕 업체마다 매달 4억~5억 원씩 적자를 내고 있어 내년쯤에는 자본금을 몽땅 까먹을 공산이 높다는 점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해답은 바로 수익원에 있다. 지상파DMB는 위성DMB와 달리 무료 방송이다. 따라서 시청자는 별 어려움 없이 확보할 수 있지만 정작 돈은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유일한 수익원으로 광고가 있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수입은 한 달에 고작 1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광고 수입이 이처럼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광고주들이 지상파DMB의 광고효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DMB 광고시청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도 큰 이유라는 지적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지상파DMB 단말기 보급이 500만 대를 넘으면 전체 TV광고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은 현실과 완전히 어긋나버린 셈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딱히 해결책도 없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무료로 출발해 지금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유료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광고 수입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안도 없다”며 “사실상 우리가 살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지었다.

전문가들은 화려한 청사진과 함께 출범한 DMB산업이 꽃도 피우기 전에 붕괴 위기로 내몰린 근본적 원인을 정부의 잘못된 정책 판단으로 돌리고 있다. 당국이 뉴미디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욕만 앞세운 채 치밀한 산업전망과 효과적인 제도마련에 소홀해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DMB산업 회생의 해법 찾기도 결국 원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당국과 업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만 돌파구가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규제에 치우친 DMB관련 제도의 대폭 완화는 최우선 과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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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