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관 정면돌파' 선언한 정의선 대표 '턴어라운드' 결연한 의지실적 반전위한 야심작 '모하비'로 이익실현 엔진 시동올해 발표하는 신차 3종·개조차량 2종도 '성장동력'

정의선 기아차 사장.
지난 2007년 중반,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다른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것이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회장의 외아들로서 책임지고 있는 회사의 경영 성적이 워낙 안 좋아 후계 구도에 장애가 될지 모른다는 추측에서다.

하지만 좀체 언론에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정의선 사장은 2008년 벽두부터 과감하게 전면에 나섰다. 기아차가 사운을 걸고 출시한 럭셔리 SUV차량인 ‘모하비’의 지난 3일 런칭 발표를 통해서다.

정의선 사장이 항간의 소문을 가볍게 일축하듯 ‘기아 새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기아차의 경영 난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부정적인 소문은 소문으로 끝내고 실적을 보여줌으로써 최고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시도에 다름아닌 것.

기아차 정의선 사장의 굳은 재도약 의지는 주변 상황에서도 뚜렷이 관측된다. 지난 3일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하비’ 출시 행사가 열린 서울 압구정동의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 로비.

여러 경호원들에게 둘러 싸인 채 행사장에 들어선 2명의 여성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다름 아닌 정의선 사장의 어머니인 이정화 여사와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의 부인인 이정화 여사는 특히 대외 활동에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아들(정의선 사장)의 공식 행사장에 거리낌없이 참석하고 그리고 누나까지 동석했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경우로 여겨진다. 즉 어머니가 재도약을 꿈꾸는 아들의 사업에 얼마만한 관심이 있는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는 것.

정의선 사장이 기아차 대표이사로 부임한 것은 지난 2005년.

하지만 이후 기아차 영업 실적은 계속 내리막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왔다. 2005년 74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2006년 1,27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2007년 역시 3분기까지 1,531억 원의 영업손실을 보는 등 적자 일변도였던 것. 대표이사 부임 후 CEO로서의 자질 검증 논란이 도마에 오른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

이런 기아차의 위기는 주가의 흐름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2007년 초 2만8,000원으로 최고가를 친 이후 계속 하락, 올 초까지도 1만원 선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매출 15조 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제2의 자동차 메이커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초라한 성적표인 셈이다. 지난 해에는 한 때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증권사들의 목표 주가 전망치 하락도 잇달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정의선 사장을 비롯해 ‘반전’을 노리는 기아차의 결연한 의지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 부회장직을 신설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던 김익환 현대기아차 인재개발원장을 복귀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 또 기아차 미국 판매법인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현지인으로 전격 교체했다.

현대기아차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 시장 부진 타개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중국사업본부를 새로 만들고 김 부회장에게 중국합작회사인 ‘둥펑위에다 기아’, 김동진 부회장에게 ‘베이징 현대’를 맡겼다.

특히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어온 기아자동차로서 김익환 부회장은 ‘특급 소방수’로 일컬어진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05년 1월 기아차 사장에 발탁됐지만 이 해 광주 공장 취업비리 사건이 터지고 귀족노조 파문 이후 12월 사장직에서 갑자기 물러났다.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홍보실장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업무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는 김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최일선 현장에 배치됐다는 것만으로도 기아차의 환골탈태는 이미 예정돼 있다는 해석이다.

기아차의 경영 ‘턴 어라운드’에 대해 정의선 사장 본인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모하비 런칭 발표 때도 “기아차가 올 해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판매 강화”라며 “올해 기아차 영업이 잘 될 것 같다”고 짤막하지만 서슴없이 바람을 피력했다. “직접 시승해 보니 느낌이 좋았다”는 정 사장은 “나도 한대 사겠다.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관심을 가져달라”고 여유도 보였다.

더욱이 모하비 런칭 때는 노조의 지원사격도 잇따랐다. 김상구 기아차 노조 지부장 등 노조원 수십여명이 행사장까지 나와 고객들에게 사주기를 당부한 것. 한 때 노조와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잡음으로 시끄러웠던 것을 감안하면 이 또한 기아의 달라진 화합 경영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기아의 실적 반전과 재도약을 위한 엔진 시동은 모하비가 걸어줄 것으로 기아측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피터 슈라이어 등 모하비 제작과 마케팅 광고에 참여한 3인의 외국인들을 활용한 광고부터 ‘모하비 신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29개월간 2,3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야심작으로 오피러스와 함께 기아차 마크 대신 독자 엠블렘을 사용하는 것도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올해 내수 1만8,000대, 수출 3만대 등 4만8,000대 판매에 이어 연간 내수 2만대, 수출 6만대 등 연간 8만대(2009년) 판매를 목표로 삼고 있다.

더불어 다른 성장 동력 엔진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앞으로 신차 3종과 개조 차량 2종 등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형 SUV 모하비를 필두로, 올 해 쎄라토 후속 준중형, 소형 AM 세 차종의 신차와 이미 발표한 뉴모닝, 가을께 로체 부분변경 모델 출시 계획 등이 이미 짜여져 있다.

기아차 조남홍 사장도 “모하비는 내가 타 본 차 중에 최고”라며 "자동차 판매대수가 올해 수출 호조에 힘입어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턴어라운드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더불어 증권가에서도 기아차의 실적 개선이 더 이상 희망사항만이 아닌 현실에 가깝다는 분석도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날개를 단 2008년 ‘정의선호’의 기아자동차가 어떻게 재도약을 이뤄나갈 지 여부가 자동차 업계는 물론, 재계 후계 구도를 둘러싸고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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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