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혼미해지는 시장… '1,500P 초반 때 분할매수' 조심스런 전망 뿐

서브 프라임 부실로 촉발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사태가 나빠지는 것을 막아볼 요량으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FRB)는 지난해 9월 이후 무려 다섯 차례, 달러 기준금리를 2.25% 포인트나 인하하였고, 지난주 3월18일에도 또 다시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렸다.

그런데다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경매방식이라는 새로운 제도까지 도입했다. 이쯤 되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과감한 금리인하나 유동성 공급의 효과는 단기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연방준비위원회가 다급하게 조치를 취할수록, 금융시장은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저러겠나?”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더욱 위축되는 형편이다.

금융시장이 발전하려면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존재하여야 하는데, 요즘 금융시장의 심리는 뒤틀리고 꼬여있기만 하다. 어떤 금융기관이 문제가 있다는 소문만 나면 즉각 그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중단되고, 그 기관은 회생하지 못하고 침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85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제5위의 증권회사 베어스턴스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JP모건체이스에 단돈 주당 2달러, 총 2억7천만 달러의 헐값에 매각되는 수모를 당하였으며(매각협상이 체결되기 직전, 증시에서 베어스턴스의 주가는 30.85달러다.

종가 기준으로도 1/15에 불과한 가격이다!), 칼라일 캐피탈은 채권단의 마진 콜 요구에 시달리던 나머지 파산의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금융시장에서는 모두들 “다음 차례”가 어디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2, 제3의 베어스턴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대단히 흉흉하다.

백약이 무효이다. 금리를 큰 폭으로 인하하고 긴급자금을 투입하여도 도무지 근원적인 처방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연방준비위원회가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못하다.

심지어 CNN머니닷컴은 최근 “중앙은행 최악의 악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버냉키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을 비롯한 중앙은행의 정책결정자들은 요즘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고 싶을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이나 위기감은 미국의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최근에 잇달아 발표되고 있는 경제지표들은 미국의 경기가 “뒤로 가고 있다”는 관측을 더욱 더 확실하게 만든다.

미국의 2월의 소비판매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0.6%나 감소하였다. 특히 자동차, 가구, 식료품 등 민간소비의 핵심이 되는 분야가 위축되어 사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다 기업의 재고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소비가 위축되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재고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가는 거듭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앞날은 불안하니 소비자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2분기 연속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내면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는데, 이런 추세로 간다면 올해 2.4분기에 이르러 경기침체가 본격화될 우려도 높다.

미국의 신용경색 및 경기침체 우려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경제나 혹은 금융시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주식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천수답 증시”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정도로 해외 변수에 크게 좌우되었다. 비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처럼 미국에서 호재가 전해지면 주가가 크게 오르고, 거꾸로 미국에서 악재가 나타나면 덩달아 우리나라의 주가도 하락하는 양상을 반복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리는 소식은 한결같이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나 경기위축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증시로서는 좋을 리 만무하다.

아울러 달러/원 환율은 1,000원선마저 넘어 크게 치솟아 주식시장을 억누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달러/원 환율이 오르면 얼핏 보기에 수출경쟁력이 높아지므로 우리나라 경제에 득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의 수출원가가 낮아지면서 수출은 늘어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유가나 비철금속, 농산품 등 원자재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 환율이 오르면 기업으로서는 원가부담이 가중되어 실적이 악화되는 요인이 된다.

또한 환율이 이처럼 치솟으면서 원화가 약세를 나타내면 환차손으로 말미암아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있는 보유지분의 평가손실이 커진다. 그러므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보유지분의 환차손을 막기 위하여 지분을 매각하여야 하고, 이는 주가 약세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인지라 국내 각 증권사의 시황담당자들은 좌불안석이다. 그동안은 저점매수를 주장하는 의견들이 꾸준하게 제시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연일 하락세만을 거듭하자 이제는 매수를 주장하는 의견이 쑥 들어갔다. 미래를 낙관하는 목소리는 사라졌고 온통 비관론만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 주가는 어디까지 하락할까? 어디쯤이면 이번 하락세의 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전문가들도 여기에 대하여서는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온통 불안한 상황에서 선뜻 어디가 바닥이라고 주장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들 “보수적인 대응”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할 따름이다. 다만 코스피지수로 볼 때 1,500대 초반이라면 하락세가 과도한 편이라서 매력적이라는 의견은 조심스럽게 개진된다.

지수 1,500이라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자산 가치 대비 대략 1.5배 정도의 수준이다. 과거 5년간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이어오면서 주가가 자산 가치 기준으로 1.5배 이하로 내려선 적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지수 1,500은 나름대로 싼 수준, 즉 가격 메리트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1,500이라면 심리적인 지지선의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물론 1,500이 바닥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동안 주가가 하락세를 거듭해왔으므로 관성에 의하여 하락폭이 커져서 주가가 1,500을 지나쳐 더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을 터.

하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정확히 바닥에서 매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수 1,500 언저리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금씩 분할매수를 늘려가는 전략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으로 판단된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는 법이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