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부시와 김정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5월 1일(현지 시간) 샌디에이고 항으로 돌아오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이라크와의 전쟁이 일단 승리로 멈췄다”고 선언햇다. 2004년 재선을 향한 첫 등정이란 이 ‘퍼포먼스’에는 30년전 그가 전투기 조종사이었음을 자랑하듯 해군전투기 1호의 부조종사로 링컨호 갑판에 착륙, 미국 대통령중 제트 전투기에서 내린 첫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20여분간의 연설에는 정장 차림이었고, 다른 때 같으면 그렇게 자주 하던 정장 차림의 레이건식 거수 경례는 하지 않았다. 4월 14일자 뉴욕 타임스에 난 ‘지각없는 거수경례’를 읽어서였을 지 모른다. 80세 루카치 교수(최근의 저서. ‘처칠-선견이 있는 정치가, 역사가’)의 칼럼

루카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946년 종전 후 미국에 와 역사학자가 되었고 1956년(32살)에 미국인이 되었다. 그는 1984년 그의저서 ‘과(過)성장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에서는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제왕이나 군주가 되어간다고 비판했었다. 그런 그는 레이건 이후 클린턴을 거쳐 부시에 이르러 대통령들이 헬기 1호기를 내리며 정장차림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것은 ‘지각없는 행위’라고 썼다.

미국 헌법에서 “대통령이 육해공군과 동원된 주방위군의 최고사령관 노릇을 하라는 구체적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군과 민(民)의 관계에서 민 우선을 천명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것은 미군이 북한과 같은 선군(先軍)이 아니라는 표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대통령 워싱턴은 군인 출신이면서도 군복 차림에 군모를 쓰지 않을 때는 거수 경례를 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도 그랬다. 특히 1차대전을 치른 윌슨, 2차대전의 루즈벨트, 한국전쟁의 트루먼은 군복을 입고 전쟁을 치루지 않았고 군복 차림이 아닐때는 거수경례를 하지 않았다.

루카치 교수는 레이건이나 부시의 정장 차림 거수 경례는 병정 놀이를 좋아하는 어린애 같은 모습으로 보일 지 모르는데, 그것은 결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군의 역할을 과장하는 태도로 비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칭호는 대장군이었으며 그 후 황제(Emperor), 제국(Empire)이란 말이 생겼음을 상기시켰다. “제발 미국 대통령은 황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정장차림 대통령의 거수경례를 ‘지각 없는 인사’로 보았다.

루카치 교수의 해석에 공감했는지 부시의 링컨호 함상 연설은 그와 동맹을 맺지않은 다른 나라를 의식한 듯 차분하고 설득적인 것이었다. 그는 후세인을 독재자라 불렀고 ‘대량살상무기 생산국가’와는 끝까지 대결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 싸웠으며, 독재자는 쫓겨났고 이라크는 자유롭다.”며 독재정권과 대결이란 새로운 화두를 꺼냈다.

부시가 지목하는 독재정권, ‘악의 축’, ‘불법정권’, ‘대량 살상 무기 생산국가’는 그럼 어느 나라들일까. 뉴욕 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 데이빗 생거는 연설의 배경을 취재한 다음, 이란과 북한을 들었다.

이란은 국무부가 정한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국가에 들어있고 불법무기생산혐의가 있으며 북한은 핵 보유를 시인하고 이를 발전 시키고 있어 “문명한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불법 정권’(outlaw regime)으로 대결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부시는 이란과 북한을 직접거명 하지는 않았지만 ‘불법정권’, 독재정권에는 포함되었다는 것이 생거 기자의 결론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이 부시의 ‘악의 축’ 연설의 최초 작성자인 데이비드 프럼(현재 보수우파인 잡지인 ‘네이션 리뷰’의 칼럼니스트)은 그의 책 ‘올바른 사랑- 조지 W. 부시의 놀라운 대통령직’에서 이미 밝혔다.

2002년 1월 부시의 국정 연설 초고에서 ‘악의 축’은 ‘증오의 축’으로 되어 있었다. 부시는 이를 ‘악의 축’으로 고쳤다. 이라크, 이란을 거명하며 북한은 제일 마지막에 넣었다. 이유는 “핵을 개발하고 있으며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미국에 응석을 부리는데 이에 대해 강경 대책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프럼은 이 연설문 때문에 백악관을 떠났다. 그때 북한은 “프럼은 전세계에 분 반부시의 열풍에 밀려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수 없게 됐다”고 코멘트했다. 한편 프럼은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실소 할 수밖에 없다”고 역 공세를 취했다.

부시는 이 해 8월 워싱턴 포스트의 봅 우드워드를 홀로 불러 ‘부시는 전쟁 중’이라고 압축될 수 있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부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직접 거명하며 목소리를 높였? ”나는 김정일을 몹시 싫어한다. 이 친맙“?본능적인 반발심을 갖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을 굶기고 거대한 범죄 수용소에서 고문을 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질리게 한다. 나는 이 자에 대해 내장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시를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게 된다.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나도 인민을 굶기고 있는 김정일이 싫다. 그러나 북한의 불법ㆍ 독재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 시킬 수는 없다. 서서히 달래가며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시의 김위원장에 대한 증오는 혐오 이상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3-09-30 15:30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