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노장은 살아 있다


월요일 오전, 시사주간지는 마감으로 눈코 뜰 새 없다. 주간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5월 26일 오전 9시 30분 주간한국 편집실. 신용하 교수가 서울대 사회대 연구실에서 전화를 걸어 기자를 찾았다. 기자는 쓰려던 기사를 밀쳐야 했다. 대신, 며칠 전 만났던 호상을 다시 떠올렸다.

“소송이라도 제기해 떨어진 명예를 되찾을 겁니다.”

노학(老學)의 노기가 염천을 비웃는다. 무엇이 그를 노하게 했던가? 최근 모 시사 월간지가 신 교수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서 과를 범했다. 신 교수가 한양대에 자신의 방대한 소장 도서를 기증한 것이 그 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된 데 대한 일종의 맞교환인 양 보도된 것이다.

사실을 왜곡 보도 한 우(愚)이며, 육순을 넘긴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학문의 도를 닦고 있는 학자에게 느닷 없는 려(慮)를 끼친 꼴이 되고 말았다. 5월 21일 인터뷰 당시 신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가르칠 곳, 연구할 곳이 생겼으니 감사하다. 교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된 것이 행복하다.” 그 행복에 참물을 끼얹은 것이다.

신 교수가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에 재학 당시 그의 지도 교수는 “정의감이 너무 강하니 정치에 나가지 마라”는 충고를 했다 한다. 젊은 시절, 격문에 가까운 정치 평론을 즐겨 썼던 그의 의기는 이제 정교한 형태로 윤색돼 침입해 오는 일본의 신식민사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데 집중해 있다. 주간한국은 신 교수의 근저를 빌어 악몽은 유효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자 한다.

이라크의 패망을 두고 그는 “19세기 제국주의론자들의 약육강식론과 적자생존론을 세련,재편한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의 결과”로 보았다. 헌팅톤의 ‘문명충돌론’과 궤를 함께 하는 대목이다. 세계화란 강대국이 약자를 지배ㆍ수취하는 새로운 지배ㆍ피지배 논리, 신제국주의 철학이라는 해석이다.

선생과의 인터뷰는 당초 예정을 벗어나 3시간을 제법 넘겼다. “육순 가까워 오면서 트로트도 부른다”에서는 인간적 면모가 느껴졌다. 일본측의 사실 왜곡과 관련, “(반박할) 사명감도, 자신도 있다”고 말할 때는 변함 없는 의기를 느꼈다. 노장은 살아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3-10-02 13:50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