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더욱 위험한 조폭심리


“거 봐라”는 말은 하지 않길 바란다. 참여정부가 처음으로 불법파업에 강경 대처하면서 탄탄한 조직력과 숱한 파업 경험을 자랑하던 강철같은 철도노조가 며칠 만에 손을 든 사실에 “거 봐라, 진작부터 강경하게 나갔으면 됐잖아!”는 말이 우리 주변에서 나오는 게 영 마뜩치 않아서다. 그리고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에 건전한 비판보다는 딴지 걸듯 비방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리는 탓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데스크’도 철도가 파업을 할 때마다 온갖 불편을 겪어야 하는 수도권 경기도민이다. 벌써 15년째 터를 박고 있는 ‘제2의 고향’을 떠나지 못한 무력감을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꼈다. 비단 ‘데스크’ 만이 아니었다. 파업 첫날,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익숙한 아침 일상이 파업으로 깨져버린데 당황하는 직장인은 한둘이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 중에는 듣기에 아주 거북한 단어도 섞여 있었다. “XX넘들, 다 짤라버려야 한다고..” “복에 겨워 그 지랄들인데, XXX을 뽑아준 젊은 X들부터 확~". 철도노조는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파업중인데, 정작 서비스를 받는 고객은 시계추 같은 일상이 깨진 분풀이를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한 친구는 반대였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 깨끗이 체념을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올 때까지 전철을 기다려야지 별수가 있느냐’는 타입이다. 그런 불편을 안 겪으려면 일터와 가까운 서울로 이사를 가든지, 서울 시내가 자동차로 터져나가든 말든 차를 끌고 나가라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상반된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도, 짜증나는 불편도 이틀 만에(데스크 기준으로) 끝났다.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친노(親勞) 정책 노선을 수정했으며 정치세력화하는 노조에 본때를 보여주었다고 칭찬일색이다. 그 과정에서 ‘법과 원칙대로’를 밀어붙인 강금실 법무장관이 남자 각료 10명보다 낫다는 제1야당 대표의 칭찬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이럴 때 경계해야 하는 게 일방통행식 사고와 싹쓸이 심리다. 노동자가 주인으로 바뀌는 세상을 더 이상 못보겠다며 악악대던 일부 계층이 이번 기회에 아예 노조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심사로 만들어내고 유포시키는 조폭적 집단심리다. 이것은 그간 새 정부가 조성한 극단적 대립구도에서 배태한 우리의 사회 심리인지도 모른다. 조폭 심리는 사회 전체로 볼 때 무척 위험하다.

시골 마을에 보따리 하나만 달랑 든 미모의 여인네가 들어왔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소박을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1년 만에 논 몇 마지기를 소작 줄 정도로 재산을 불렸다. 미모에 반한 마을 남정네들이 마누라 몰래 퍼다준 결과였다. 흥분한 마을 부녀자들은 그 여인을 찾아가 ‘왜 우리 남편에게 꼬리를 치느냐’고 항의했지만 ‘증거를 대라’는 논리정연한 말에 돌아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험악한 분위기에 밀려 여인은 떠나기로 했다. 홀가분한 마음에 ‘보란 듯이’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 있는 우물가를 지나가는데, 부녀자들은 길을 막아 섰다. 승리감에 취한 부녀자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말은 행동으로, 손바닥은 주먹으로 변했다. 그녀는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한 채 실려나가야 했다.

아무리 속이 끓었다손 치더라도 여인이 마을을 떠나면 더 이상 아무런 일이 없을텐데도 화풀이 하듯 언어나 폭력을 동반해 보복을 하는 게 바로 조폭적 심리다. 이건 사회 저변의 층이 좁고 얇으며, 불신이 난무하는 곳에서 나타나는데, 압축적 경쟁성장으로 교역순위 세계 10위 운운하는 우리도 사회의 두께로 보면 아직도 거기에 해당한다.

언어감각으로도 그렇다. 우리는 오르내림이 심한 현상을 널을 뛰듯 한다고 표현하지만, 영어로는 롤러코스트를 타듯 한다고 한다. 널은 힘이 한쪽으로 완전히 쏠렸다가 순식간에 반대로 넘어가는 극단적인 현상을 보여주지만 롤러코스트는 오름과 내림이란 흐름의 연속선상에 선 균형을 나타난다. 이게 바로 사회 저변에 깔린 힘의 차이를 언어 감각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 사회의 힘과 구성원의 심리 수준을 헤아리지 않고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를 계기로 노사관계를 네덜란드식으로 바꾸느니, 독일식으로 바꾸느니, 미영식으로 바꾸느니 섣부른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론적으로 북유럽 사회주의의 전형인 스웨덴이나 합리적인 독일식이 가장 완벽한 노사관계다. 그러나 그걸 따르기에는 아직 우리의 사회적 힘이 부치지 않는가. 시간이 필요하다.

거창한 이상을 畸羞릿募?올 하투를 기점으로 노사관계에?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법과 원칙의 준수라도 뿌리를 내렸으면 싶다. 또 노사관계에서 싹쓸이 하듯 한쪽을 완전히 제압하려는 조폭적 심리와 그 사회적 갈등 요인을 걷어내고, 다음 목표로 넘어갔으면 한다.

입력시간 : 2003-10-02 17:0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