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입국

[people] 경계선 위의 삶 37년…선을 넘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입국

명준은 남과 북, 어느 쪽의 이념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그만을 위한 광장이자 동시에 밀실인 바다였다. 그리고 끝내 죽음을 택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했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서 고독하면서도 긴장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는 의미였다. 소설 속 명준처럼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둘 다를 버리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59) 교수. ‘친북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번번이 입국이 좌절됐던 그가 9월 22일 오전 한국 땅을 밟았다. 37년 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국가정보원이 발부 받아 놓은 사전 체포영장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있는 상태. 입국과 함께 곧장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1968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82년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로 임명되기까지 학자로서의 그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남과 북의 경계선에 선 그는 늘 ‘불행한 한국인’이었다.

갈등의 시작은 유신 정권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식인들이 탄압을 받자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발족하면서 ‘반체제 인물’로 분류됐다.

또 91년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북한 이후에는 ‘친북 인사’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북한의 당 서열 23위인 김철수(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와 동일인이다”라는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의 증언까지 나오는 등(물론 법원에서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송 교수에게는 험로의 연속이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돼 있는 만큼 송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공소 보류’ 등 타협책으로 원만하게 결론 맺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 방문 행위 등이 범법 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사회적 변화 추세나 독일과의 외교적 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들과 많은 시간 대면하면서 민족의 평화로운 번영과 발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제는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0-06 13:53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