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노무현 코드 바이러스


한번 코드가 같아지면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본적인 판단 잣대마저 거꾸로 서는 모양이다.

최낙정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은 9월26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발언을 했다. 태풍 ‘매미’가 상륙하는 날 저녁 노 대통령의 공연 관람을 놓고 시중의 비난여론이 빗발친 데 대해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이 올 때 오페라를 보면 안됩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최 장관은 또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태풍으로 난리가 났었다”며 “당시 주지사가 대통령을 모시고 골프장으로 안내했지만 다음날 지역신문에서는 긍정적인 기사가 실렸다”고 미국의 예까지 제시했다.

이어 “만일 우리나라 신문이었다면 ‘이런 난리통에 대통령이 주지사와 골프를 치다니 개판’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라고 비꼰 뒤 “(노 대통령이) 해수부장관 시절 곁에서 모셔봤는데 가장 훌륭한 분”이란 코드 동일체 강조 부분도 잊지 않았다.

그의 말을 요약해 보면 ‘대통령이 나선다고 태풍이 잦아들거나 일본 쪽으로 휘어가지도 않을 텐데 가까운 곳에서 가족들과 공연 좀 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언론에서 이렇게 칼침을 놓느냐’는 불평이다.

장관의 이런 언행을 굳이 탓하고 싶지도 않다. 노 대통령은 이미 40여년만에 들이닥친 초강력 태풍이 남쪽 해안에 상륙하는 시점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고, 수조원의 재산피해가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한가로이 가족과 문화 공연을 관람하며 박수치고 웃고 했던 터다. 국정의 최고 영수인 대통령이 그럴 진대, 그와 코드가 맞다고 강조하는 부하 장관의 언행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딱히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최 장관에게 한가지 부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있다. 다음 강연계획이 잡히면 그 때는 영ㆍ호남의 수재민들을 대거 초청한 뒤 그들 앞에서 같은 방식으로 “우리 대통령 훌륭한 분”이라고 결론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수재민 앞에서 노 대통령과의 ‘동일 코드’를 강조한 뒤 “뭐가 그리 대수라고…”하는 대목을 반복해 보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럼 그 다음 상황은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정도 반응은 있어야 이런 ‘노무현 코드 바이러스’가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0:19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