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솔직하면 스와핑 현장도 보인다


마치 태풍 ‘매미’가 또 한번 지나가는 것 같았다. 10월 어느 날 TV와 신문에 ‘스와핑’이라는 낯선 단어와 함께 등장한 몇몇 부부의 벌거벗은 모습, 그리고 뒤를 잇는 요란한 보도들은 태풍 속보나 다름없었다.

TV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며 스와핑 현장을 훑고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간지들이 뒤를 받쳤고, 여성지들은 ‘ 충격 던진 4쌍의 스와핑 전말, 40대 남자의 체험고백’, ‘스와핑 충격 차마 다 공개 못한 수사 뒷얘기’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중이다.

스와핑이란 단어가 처음 나오던 날, ‘그게 뭐야? 부부간에 파트너를 맞바꿔 섹스를 하다니, 망측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이젠 주변에서 스와핑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친구들 모임에서 ‘우리도 심심한데 스와핑이나 한번 할까’하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흔한 단어가 될 지경이다. 오죽하면 TV를 보던 아이들조차 ‘엄마, 스와핑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라고 물었다고 할까?

스와핑은 복잡한 인간 심리가 함께 어우러진 성적 도착증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남의 성행위를 엿보고 싶어하는 관음증과 상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노출증의 요소를 함께 간직한, 성적 행위로만 보면 시대를 앞선 행위일런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겐 상대의 몸을 거쳐 간 경쟁자가 있어야 성적 흥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적 경쟁 심리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은밀하게 선택되었다는 특권 의식도 있으니 부부 스와핑은 그 무엇보다 자극적이고 중독성도 강하다.

하지만 그런 특성만으로 스와핑을 받아들인 우리 사회의 성심리를 진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 이전부터 스와핑이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심리적 토양이 형성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 몇해 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기 드라마 ‘애인’ 의 남녀 주인공들이나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앞집 여자’의 여주인공에 대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는 수군거림이 주변에 없지 않았다.

슬리퍼를 끌고 동네 학원강사를 만나러 가고, 몸은 주되 마음은 20%만 준다는 ‘쿨’한, 유부녀의 바람 이야기는 바람난 우리 사회를 비춰보는 거울이었다. ‘저런 저런’ 하면서도 저녁마다 TV앞으로 몰린 데는 현실과 도덕(윤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었다.

스와핑도 마찬가지다. 스와핑이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1년 스와핑을 소재로 한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가 개봉되면서 였다.

스와핑이란 단어조차 아주 생소한 때였으나 영화를 기획한 장은석 프로듀서 주장에 의하면 영화 제작을 위해 스와핑 사이트에 가입했더니 회원이 무려 5만쌍에 달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드러난 스와핑 사건은 현장을 처음 카메라에 담았을 뿐 그 토양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는 말이다.

‘아이구 망측해라’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언론 매체들이 서로 뒤질세라 스와핑 기사를 크게 다루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특유의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겨냥한 것이다. 그건 성 해방을 부르짖는 유럽에서나 가능했던 스와핑 당사자들이 ‘권태로운 부부관계에서 벗어나 부부애를 좀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억지를 부리는 태도와 다를 게 없다. 욕을 하면서도 그런 류의 짜릿한 기사를 찾는 대중이나, 기사 거리를 제공하는 소수의 행위자나 서로 성(性)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한 것은 우리 젊은이들이 점차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버리고 솔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아이닷컴(www.hankooki.com)이 스와핑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규를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한다’ 는 대답이 여전히 67.4%에 달했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므로 존중해야 한다’ 는 의견도 23.3%에 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스와핑은 폭력성이 없으며 부부간에 합의된 것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일부 네티즌의 반응에 대해서도 동의 여부를 떠나 성에 대한 가면을 벗어 던진 솔직한 태도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동성연애자로 알려진 사상가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18세기는 섹스의 시대이고, 인간은 19세기에 들어서야 진정한 성에 눈을 떴다고 했다.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적 행위인 섹스와 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인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주간한국이 거리로 나갔다.

이번 호의 커버스토리인 ‘현장보고-은밀한 유혹’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서울 시내 여대생들의 ‘성 토크’ 는 달라진 우리 젊은이의 성 의식을 보여준다. 기성세대에겐 ‘어머, 말도 안돼’라는 답변이 돌틸?정도로 도발적인 질문에도 그네들은 솔직하게, 또 당당하게 답변했다. 솔직한 만큼 아름답고 건강한 게 또 성이 아닐까 싶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 2003-10-28 14:59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