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조선왕조에서 배우는…'을 읽고


한정부에서 대통령과 함께 일하고 퇴임도 함께 한 유일한 장관, YS문민정부에서 공보처 장관을 지낸 오인환. 그는 196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이래,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 주필직 등을 28년간 역임했다.

이런 그가 퇴임 5년 6개월 동안 장고를 거듭, 547쪽이나 되는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 관리의 리더십”이란 책을 10월 20일께 펴냈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사실을 근거로 한 지도력 비평서인 동시에, 지도력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해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료와 어려운 역사성의 특수성에 비추어 역사적 상상력과 추리력을 구사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 놓았다. 책에서는 ‘만약…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많이 사용했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통하지 않으나 여러모로 집어보고 새로운 지도력의 지평을 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이 책에서 역사를 반면 교사로 삼아 “…이렇게 했어야 했다”또는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며 당위와 소망을 곳곳에 펼치고 있다.

그가 조선의 군주(正祖까지)와 그들을 둘러싼 사림(士林)의 5백여년 유학정치가 성공으로 귀결 지워질 수 있었던 것은 “군(君)과 신(臣)이 상생의 정치, 공생ㆍ공존의 정치를 했기 때문 ”이라고 본 것은 가슴에 와 닿는다. 드러 내놓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분명 역사의 새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

노정권쪽에서 보자면 사정이 더 절박하다. 노무현 정권은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헌정사를 통틀어 최초로 등장한 진보 정권이고, 세칭 비주류가 그간의 주류 세력을 젖히고 집권하게 된 정권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해방 직후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좌우 대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고, 그때보다 심각한 보ㆍ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반도 주변정세는 북한의 핵무장, 일본의 군사대국화, 미군의 후진 배치 등의 변수로 구한말보다 더 불안정한 국면을 맞고 있다. 노대통령은 개인적인 자질론 시비에도 휘말려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정의 다른 쪽 당사자인 야당도 대통령 선거 뒤 새로운 모습의 지도력을 국민에게 선 보이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도 불안한 사태다는 분석이다.

그는 우려하고 있다. 그는 노정권이 헌정사상 초유의 다층구도(多層構圖) 위기 속에 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그는 묻는다.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치국의 최우선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매사에 각(角)을 세우고 보수 우파등 여러 세력과 대립함으로써 비우호세력이 계속 결집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할 것인가? 당초부터 공정공존의 정치, 화합과 타협의 정치는 포기하고 가야 하는가?” 이후, 그는 결론 짓는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역사의 거울에 오늘을 비추어 성찰의 계기와 개선의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슬기로운 일이 될 듯 쉽다”고.

신문기자가 심층기사를 쓰듯, 눈높이를 의식했다는 그의 책에서는 ‘오늘의 현실이 어제의 연장 속에 있으며, 그 개선책을 낙관한다’는 대목이 많이 눈에 뜨인다. 그는 YS 이후 리더십 부문에서는 중종, 선조, 인조 등에 성찰의 눈을 돌렸다. 조선에서 쿠데타가 일어 났던 것은 태종 이방원 쿠테타, 세조 쿠데타, 중종반정, 인조반정 등이었며,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박정희의 5ㆍ16혁명, 전두환의 12ㆍ12사태 등 여섯 차례라며 그 랭킹을 매기고 있다.

1위는 태종의 쿠데타. 형제까지 죽이는 희생자가 있은 쿠데타지만 건국초의 조선을 단단한 반석위에 올려 놓았고, 적절한 시기에 세종에 양위, 그의 대왕시대를 만들어 준 공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2위와 3위는 세조와 박정희 쿠데타.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뺏었지만 업적이 뛰어났고 박정희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으나 유사이래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공.

4위는 연산군 폭성을 종식 시킨 중종 반정. 5위는 전두환의 12ㆍ12사태. 민주화를 7년이상 지연시켰지만 경제를 안정시키고 공약대로 정권교체를 실현 시켰기 때문. 6위는 치욕적인 정묘ㆍ병자호란을 유발시킨 인조반정으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언론과의 전쟁 문제 등을 중종과 개혁의 적자였던 조광조의 관계를 빗대어 비평하고 있다. “중종과 조광조의 밀월이 계속되었다면 군신이 함께 주도하는 개혁, 찰떡궁합 개혁이 이뤄 졌을 것이다.”

조광조는 자신과 동조 세력은 군자로 본 반면, 훈구 세력은 소인배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가졌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인배가 많지 군자가 많은 것은 아니다. 그의 개혁과정은 과격하며 과속이어서 성공률이 매우 낮았다. 거기에 중종은 4년간의 개혁 혁신의 주동자이면서 3埇?상소한 그에게 개혁을 결국 귀찮고 지겨운 것이다고 실증을 느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어느 택시 기사의 말을 생각했다. “좀 이상한 것은, YS때 오인환 장관의 얼굴이 정치계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떻게 된 것입니까?” 길다면 긴 침묵을 그는 책으로 답변했다. 노 대통령에게 필독을 권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3-10-28 15:03


박용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