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한나라당과 SK, 그 다음 수순은?


한나라당이 SK로부터 모금한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당시 사무총장이던 김영일 의원의 시인과 함께 최병렬 대표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이 실무 책임자의 소환 조사를 계속하고 있고, 자금모금 과정의 당 지도부 인지 및 지시 여부 등도 미제로 남아 있지만 ‘SK로부터 들어온 100억원의 불법 자금이 한나라당 대선을 위해 쓰였다’는 명제는 이미 성립된 상태다. 추가로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착복이 드러난다면 모를까 더 이상의 메가톤급 충격파가 있기는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이 궁금해진다.

SK에서 100억원을 내놓았는데 과연 다른 기업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삼성 LG 현대그룹 등 굴지의 기업들이 기업의 생사를 가늠할 수도 있는 대선을 모른 체 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이들도 금액의 차이야 있겠지만 정상적 혹은 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대선 후보 진영에 후일을 기약하는 ‘검은 돈’을 제공했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들은 무사무탈하게 넘어가고 SK 관계자들만 처벌받는 선에서 종결된다면 분명 형평성의 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

문제는 더 있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이후에는 줄곧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이회창 후보를 앞서 나갔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기업 측에서 과연 지는 쪽에만 ‘베팅’을 하는 우(愚)를 범했을까 하는 점이다. 한쪽에 거금이 갔다면 다른 쪽에는 일정 수준의 보험금이 배분되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지지도가 앞서 있는 쪽인데 기업이 이를 외면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직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칼을 쥔 여당 쪽에서 동반 책임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선 자금 문제에서 야당과 1개 기업만 수사한 채 서둘러 ‘판도라의 상자’를 닫는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국민이 고대하는 정경유착의 고리끊기와도 거리가 멀다.

일단 멍석은 깔렸다. 이제는 유력 기업군 전체와 여야 정당을 모두 대선자금의 수사 대상에 올려야 한다. 그 길만이 과거의 낡은 정치 관행을 단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또 국민에게 정치권이 사죄하는 길이기도 하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 2003-10-28 15:16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