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People] "여보, 현대그룹 제가 맡았어요"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지금껏 그는 현대가(家)의 며느리였고, 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은 고(故) 정몽헌 회장의 아내였을 뿐이었다. 현실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는 부재했다.

고 김용주 전방 창업주의 외손녀, 용문학원 이사장 김문희 여사의 차녀, 경기여고- 이화여대-미 페어레이 디킨슨대 대학원 등 결혼 전의 이력만이 그녀 본인을 설명하는 유일한 수식어였다. 심지어는 걸 스카우트 연맹 이사, 대한적십자사 특별자문위원 등 적잖은 사회 활동도 ‘내조’의 연장선 상으로 비쳤다. 1976년 현대가에 몸을 담은 이후 27년을 그렇게 살았다.

남편과 시아주버니(정몽구 현대차 회장) 간에 벌어진 이른바 ‘왕자의 난’, 시아버지(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작고 이후 그룹의 몰락,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자살…. 최근 몇 년 간 그녀가 겪었을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테다.

그런 그녀가 마음을 다잡았다. 10월 21일 현대그룹의 지주 회사인 현대 엘리베이터 회장에 전격 취임한 것.

“애들 아버지가 그렇게 가신 뒤에 많이 안타깝고 애석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용기를 많이 주고 사랑해 주셔서, 이에 힘을 얻고 그룹 일을 맡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간 그룹의 세(勢)가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또 마땅한 대안이 없어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지만, 며느리 현정은(48)이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은 대단한 용기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현정은 체제’ 출범이 그룹 경영에 큰 변화를 낳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현대그룹은 현대투신증권, 현대투신운용이 매각돼 현대오토넷, 현대정보기술 등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상선, 택배, 아산, 증권 등 5개사 체제로 꾸려진다는 큰 틀이 짜여진 상태다.

현 회장의 취임은 고 정몽헌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는, 또 공백 상태에 빠진 그룹 지배구조를 안정시키는 과도 체제의 성격이 짙은 셈이다. 현 회장 역시 “각 계열사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책임 경영 체제로 그룹을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정은 체제가 과연 순항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현대가 내부에서 ‘정씨’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에게 그룹을 통째로 넘겨준 것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때문일까. 그녀의 회장 취임에 맞춰 큰 딸 지이(26)씨가 현대상선에 입사, 이미 후계자 키우기에 돌입했다는 관측도 나돌고 있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0-28 15:45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