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2년차 안시현, LPGA대회 CJ 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

[People] 그린 위의 19살 신데렐라
프로 2년차 안시현, LPGA대회 CJ 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

2라운드까지 3타차 선두를 유지했을 때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국내 무대에서조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안아 본 적이 없는, 골프 팬들에게 아직 이름 조차 낯선 그녀아니었던가. 더구나 2위 그룹은 미국 LPGA 무대를 주름잡던 강자들. 박세리, 박지은, 데이비스 매튜…. 명성 만으로도 그녀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승도 해 본 사람이 한다”고?

17번홀까지 버디 5개와 보기 3개를 주고 받으며 최종 3라운드에서 2타를 줄이는 데 그쳐 박세리 등에게 1타차까지 쫓긴 상황. 단 한번의 샷 실수로, 경기 시작 내내 지켜온 1위 자리를 내 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했다. 18번홀(파5)에서 두번째 샷을 큰 호수와 벙커 너머로 온 그린시켰다. 이어진 정확한 퍼팅. 3타차 우승을 확정짓는 이글 샷이었다.

프로 2년차 새내기 골퍼 안시현(19)이 2일 제주 나인 브릿지 골프장에서 끝난 CJ 나인 브릿지 클래식에서 우승, 한국 여자 골프의 새로운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여자 골퍼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미국 LPGA 정규 대회에서 첫 우승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 것. 상금 18만7,500만달러(2억2,000만원 가량), 내년 미 LPGA 대기선수 1번(사실상 풀 시드), 2005년 전 경기 출전권 등은 덤이었다.

일찌감치 대성할 기대주로 꼽혔던 그녀는 그러나 지금까지는 ‘미완의 그릇’에 불과했다. 골프에 입문한 것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 연습장을 찾은 열 두 살 때. 이후 중ㆍ고등학교를 거치며 김주미, 임성아, 박원미 등 또래 선수들과 함께 주니어 골프의 간판 주자로 활약했다.

2000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이어 2001년 국가 대표로 뽑혔지만,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는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인천 인명여고 졸업 후 프로에 입문한 안시현은 날개를 달았다. 2002년 국내 2부 투어인 트림 투어에서 5회 출전해 우승 3회와 준우승 2회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며 화려하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잔뜩 기대를 안고 데뷔한 올해 정규 투어. 대회 때마다 우승권을 맴돌며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지만 준우승만 3차례를 차지하며 2승을 수확한 김주미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 출전한 LPGA 대회에서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쟁쟁한 슈퍼 스타들을 제압함으로써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를 일거에 떼내 버리게 됐다.

그녀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든든한 밑거름이 된 사람은 아버지(안원균)의 친구인 정해심 프로. 중학교 때부터 그녀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기 시작해 올해는 아예 캐디를 자처하기도 했다. 감격스럽게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을 한 안시현은 “올 한 해 내 백을 고생스럽게 메주신 정 프로님에게 가장 감사한다”며 “앞으로 더 넓은 곳에서 좋은 선수들과 겨뤄 보고 싶다”고 수줍지만 당찬 소감을 밝혔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1-06 16:54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