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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접으며] 화염병 시위에 대한 단상


화염병은 여전히 시위 문화의 상징이다. 종말을 고한 군부 독재 시절의 유품(遺品)이라는 일반의 기대를 보기 좋게 짓밟았다. 국민의 정부라던 김대중 정권에서도 위세를 떨쳤듯, 참여 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에도 끈질기게 존재한다.

휴일인 11월 9일 오후, 서울 도심은 마비돼야 했다.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 노동자 대회를 위해 모인 5만여명의 노동자들은 경찰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사태의 절정은 화염병이었다. 2년 8개월 만에 맛보는 ‘화염병의 추억’이었다. 경찰 40여명과 시위대 50여명 등 부상자만 100여명이라는 사실보다도 사람들은 다시 등장한 화염병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편이었다는, 인권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개막한 민주화 시대가 구태를 답습한다는 사실이 어불성설이라는 분위기였다. ‘노동 귀족’이라는 시각, 혹은 한국 경제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노사 관계라는 등 우리 시대 노동자들을 보는 국내외의 견해는 어느새 국민 각자의 생각으로도 전이돼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 절대적인 비교를 하자면 노동자들의 권리는 분명 크게 신장됐고, 생존이 걸린 절박한 사안은 급감했다. 격렬 시위라는 과거의 틀을 동원해 계급이기주의적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사례 또한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에 서울 도심을 불바다로 만든 이번 화염병 시위는 국민의 의지력을 시험한다.

그러나 정당성 훼손에도 불구하고, 이 ‘폭력 시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몇 가지 수치상의 통계와는 달리, 노동자들은 현 정부가 들어 서면서 오히려 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께서 예전에 변호사 시절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때도 있었지요? 몇 차례 청와대 신문고에 진정을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군요.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 최근 분신한 세원테크 이해남 금속노조 지회장은 유서에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었음을 적고 있다.

“분신을 투쟁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분명 옳다. 화염병을 투쟁으로 삼는 시대도 지났다는 말 역시. 하지만 그 같은 말은 ‘참여 정부’나 ‘민주화 시대’라는 외피에 걸맞는 내용물이 채워질 때만이 가능한 얘기다. 잔뜩 기대감만 높여 놓고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들의 배신감은 군부 독재 시절보다 더 커질 수도 있는 법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3-11-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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