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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黃長燁씨는 외롭지 않다


북한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씨(81)가 지난 5일 8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짧은 기간의 방문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고,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돼 민주주의가 보다 더 발전한 국가를 건설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인천공항에서 밝혔다.

1997년 2월 황씨의 한국 망명 이후부터 미국 초청을 기획했던 미국 비영리 보수단체인 디펜스 포럼의 대표 수잔 솔티는 “미국에 온 것 만으로 성공이다”고 그의 방미를 평가했다.

솔티 대표는 방미 직전 “우리는 흥분해 있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북한 망명자를 초청했지만 그는 우리가 원했던 고추 중 가장 크고 매운 고추이기에 초청을 바라왔다”고 말했다.

황씨는 미국을 떠나기 직전 가졌던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에 왔을 때 뉴욕공항에서 바로 워싱턴으로 비행기를 갈아탄 것이 섭섭한 듯 말했다. “미국에 대해 영화 한편 본 것 만도 못하다. 미국에 다시 올 수 있다면 다시 오고싶다”고 했다.

그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손발이 묶인 자유’속에 산 7년간의 서울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온지 6년이 넘어 7년째 접어 들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 북한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한국의 현정치에 대한 연구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한국을 아는데 5년이 걸릴 것이라고 하기에 너무 사람을 깔보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아직도 유치원생이다. 정부 정책을 평가할 식견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서울 생활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월간 신동아 11월호 특별 인터뷰에서 밝혔다. YS는 1월 7일과 6월 16일 두 차례 그를 만났다. 그는 YS에게 1월 첫번째 만났을 때 부인이 그의 망명소식을 듣고 “옛날 사람들처럼 사약을 가지고 있다가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YS는 전했다. “딸과 아들이 있는데 딸은 연행돼 가는 도중 차에서 뛰어내려서 죽고, 아들은 수용소로 끌려 갔을텐데 아마 죽었을 거라고 말하더라구요.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보통 불쌍한 게 아니야. ‘건강이 어떠냐’ 물었더니 ‘좋다’ 이러더라고. 참고 견디는 수양이 돼 있는 거지. 내가 전두환 정권 때 3년 동안 갇혀 (가택연금)있어 봤잖아요. 감옥보다 훨씬 나쁩니다. 갇혀 지낸다는 게. 이거는 나가지도 못하고 누가 오지도 못하고. 황장엽씨도 그리 지낸 거 아닙니까.”

YS는 재임 중 그를 만나지 않았다. YS의 판단으로는 당시 김대중 야당 대통령후보와 북한 노동당과의 관계에 대해 무언가를 YS에게 전할 것이란 대선의 폭풍(?)을 막기 위해서였다. LA타임스는 YS가 이런 그의 서울에서의 생활을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의 서울 생활은 그렇게 외로운 게 아니었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은 그를 ‘지성(至誠)의 지성(知性)’으로 보고 있다. “000선생이란 말을 들으면 역겨워지지만 黃長燁선생이란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썼다. (‘황장엽 비록 공개-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책 중에서. 2001년 7월 출간)

조 편집장은 지난 8월말 토요일에 뉴욕 타임스 주말부록 ‘매거진’의 객원 기자인 피터 마스(80년대 말 뉴욕 타임스 서울 특파원)를 그에게 안내했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특집을 위해서 였다.

마스 기자는 듣는 것이 불편한 80세가 넘은 그를 만나고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타입이 아님을 느꼈다. “김정일에 대해 말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인이나 지도자로서 국가의 발전이 인민의 행복을 꾀한다면 그는 F학점이다. 독재자로써 그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인민이 이동 못하도록, 어떤 일도 할 수 없도록 조직했다. 그의 이데올로기 밑에 인민을 묶었다. 현재의 북한 독재체제는 역사상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밝혔다. 남북한의 교류만이 북한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물꼬가 된다는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북한의 변화를 희망한다. 소떼를 북한에 몰고 갔을 때도,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을 때도 다들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변했다는 것인가.

변화란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어떤 기준을 말해야 하지 않는가. 북한의 본질적 변화란 독제제도의 제거다. 독재 그 자체가 복잡하고 많은 것을 포함한다. 수령 절대주의적 독재를 배제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워싱턴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그는 비록 부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지만 부시는 그가 미국을 떠난 직후 6일 ‘민주주의를 위한 기부금재단’ 설립20주년 기념식에서 그의 독재체제 ┛킹逵?같은 ‘압제전초기지’(outpost of oppression)진격론을 편 것이다.

북한, 쿠바, 미얀마, 짐바브웨를 “미국의 민주주의 의지가 시험받고 있는 나라”, 즉 ‘압제전초기지’라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속박과 공포, 침묵 속에 살고 있지만 이들 정권이 자유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남아공의 만델라를 예로 들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승리를 예견했다. “언젠가는 수용소, 교도소, 망명지 등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지도자가 떠오를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시민인 황장엽씨에게 서울이 망명지가 되어서도 안되고 서울의 집이 창살없는 감옥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가 자유, 민주주의 수호전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3-11-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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