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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송두율 교수와 황장엽씨


1973년 8월 독일 뮌스터 대학 앞 커피숍에서 유럽지역 북한공작원으로 활동하는 이재원으로부터 “유신 독재로 혼란스러운 남한에 비해 북한은 경제적인 면은 물론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해 있는 상황이므로 조국통일의 구심점은 북한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발전된 모습을 한번 보고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의 입북 권유를 받고… 평양 근교 이름 미상 초대소에서 2주간 체류하면서…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연락부 부부장으로부터 조선 노동당에 입당하라는 제의를 받고… 선서 및 충성 맹세문을 낭독하는 절차를 거쳐… 위 부부장으로부터 “독일에 가면 유학생이나 반정부 활동을 하는 애국인사들을 규합해서 조국통일 사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라”는 지령과 함께 미화 약 2,000달러를 교부받아 독일로 돌아 온 후…송두율 교수(독일 뮌스터대 초빙교수)에 대한 서울지검 공안부가 19일 내놓은 국가보안법 위반 공소장의 제1항 혐의는 이렇게 길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구속전인 10월 2일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입당 부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저는 노동당원으로 의식하고 활동해 온 바 없습니다. 남한에서도 외국 출국 시 소정의 교양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의 첫 북한 방문 때 받았다는 ‘주체사상 교육’과 ‘노동당 입당’은 1970년대 북한 방문자들이 거치는 일종의 불가피한 통과의례 였습니다. 그 당시 행한 행동들은 3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저의 뇌리에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저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리라는 생각도 없이 국정원에서 자발적으로 언급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송 교수를 구속기소하며 “송씨는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은 살아 온 과정을 볼 때 존경받을만한 가치가 있고 나도 존경한다’고 밝히는 등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그의 변호인이며 조사과정에 입회했던 송호창 변호사는 오마이뉴스 21일자 기고에서 반박했다.

송 변호사는 10월 13일 하오 1시20분께 있은 이 대목 심문에서 송교수는 김일성에 대해 “역사적 인물이고 한시대의 정치인이란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짧게 답변했다고 썼다. 조서에는 검사가 “그렇다면 존경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돼있지만 송 변호사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로 정정했는데 “왜 존경한다는 식으로 브리핑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송 교수에게는 이번에 국가보안법 혐의 외에도 지난 98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상대로 그가 “송두율이 김철수라는 가명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한 것과 관련해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 대해 사기 미수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에 의하면 송 교수는 91년 5월 24일 묘향산에서 김일성과 3시간 동안의 단독 면담에서 “송 교수 같은 학자가 한 두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격려를 받으며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이다.

송 교수와 황장엽씨의 인연은 김일성 면담후인 91년 5월 24일 이후 어느 날, 통일 전선부 부부장 임동옥이 황씨에게 송 교수에 대해 설명하면서부터 였다. 임동옥은 말했다. “송교수는 남한에서도 영향력이 크고 특히 독일에서 다년간 조직 사업을 하다 보니 독일에 와있는 남한 유학생들이 다 그를 따르고 있다. 위(김일성ㆍ김정일 지칭)에서 송 교수를 크게 쓸 생각으로 앞으로 송 교수의 이름을 ‘김철수’라고 부르기로 했다.”

송 교수는 황씨와의 만남을 ‘악연’이라 표현했다. 그가 최근에 서울에서 발간한 ‘경계인의 사색’(2002년 10월)에서 였다. 그는 ‘인간의 길’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가 철학과 역사에서 보았던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우경화, 다시 좌로의 회귀를 살폈다.

그는 1933년 미국 망명, 48년 동독으로 귀환, 1955년 최고의 영예라는 민족상까지 받고 61년 베를린에 강연차 왔다가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자 서독으로 망명한 에른스트 블로흐와 황장엽씨를 같은 마르크스 철학자로 비교했다.

그는 블로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근본은 희망에 있다고 보고 그 철학 속에 유대교나 기독교적 종말론의 흔적을 깊게 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갈등을 빚었다고 보고 있다.

블로흐는 서독 튀빙겐대학 강단에서 “나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될 것이다”며 ‘아직 있지 않은 것’으로 대변되는 유토피아 사상인 마르크스주의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반면 철학자인 황씨는 ‘사랑’이나 ‘조화’로 주체사상을 설명하면서도 마르크스?폭력에 의거한 계급투쟁을 선동했다고 비판한다고 보고 있다.

또 황씨가 현실 정치에 오래 간여한 때문인지 한국에 와 “노동자의 파업과 학생들의 투쟁을 ‘폭력 노선’으로까지 단죄한다”며 황씨를 ‘냉혹한 체제옹호론자’라고 보았다. 황씨는 마르크스주의를 유토피아의 철저한 파탄 상태로 규정했다고 했다. 송 교수는 “북한을 등지면서 모든 것을 버린 황씨의 결단은 시작은 극적이었으나 결과는 오히려 현실 정치를 복사한 메마른 산문에 가깝다”고 비평했다.

오히려 앞에 길게 쓴 송 교수에 대한 범죄혐의가 ‘현실 정치를 복사한 메마른 산문’이 아닐까 독자에게 물어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 2003-11-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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