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People] 복수정답에 고개 숙인 교육당국
이종승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수능이 고개 숙였다. 2004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총괄한 이종승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이 수능시험 이후 불거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시험 직후, 학원 강사의 출제 위원 선임 논란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뤘던 이 원장은 1994년 수능이 도입된 이래 사상 처음으로 언어 영역 부문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11월 24일 종합청사 브리핑실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언어영역 17번 문제와 관련, 해당 분야

전문가와 출제진 등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복수 정답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책임있는 행동을 보이겠다”고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 원장의 사퇴만으로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수능의 신뢰도를 다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다. 수능을 관리하는 평가원의 존립 자체까지 위협 받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수능관리의 총체적 부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학원강사 출신의 초빙교수가 출제위원으로 포함되면서 선정 단계에서부터 자격 문제가 불거졌으나, 당국은 이를 심사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출제위원 156명 중 90명(58%)이 서울대 출신으로 특정 대학의 독점이 심각했고,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교사 중 66%가 수능 참고서 집필 경력을 갖고 있었다. 특히 올해 수능 출제위원 중 4회 이상 참여자가 14명이나 되고, 심지어 8회나 참여한 위원도 있어 반복 출제에 따른 문제 유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원장이 고개를 숙인 데 이어 윤덕홍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마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사과했지만 고건 국무총리는 이 원장의 해임을 요청했다. 한국교육평가학회장을 역임한 이 원장으로서는 지난해 9월 평가원 원장에 임명돼 14개여 월 만에 불명예 퇴진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복수 정답이 인정된 데 대해 원래 정답이었던 3번을 맞힌 수험생들이 국민 감사 청구 서명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뒤늦게 정답으로 인정 받은 5번을 맞힌 수험생들도 국민 감사를 청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많게는 20문제, 적게는 3문제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 유사 정답 논란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이번 문제를 평가원장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희생타’ 방식으로 마무리하기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유사 문제 시비, 출제 위원 명단 유출, 시험지문 유출 논란, 새로운 문제 발굴의 한계 등은 각론이다. 여기에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는 비난은 현행 수능 제도가 맞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압축하고 있다.

제 2, 제 3의 이종승 원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2-03 10:17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