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서 사망한 김만수씨 딸 영진양

[People] "이 땅에 저희같은 가족이 생기지 말았으면 "
이라크서 사망한 김만수씨 딸 영진양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찬반 논란 속에 11월 30일 밤 충격적인 외신이 날아들었다. 이라크 북부의 티그리트 인근 고속도로에서 오무전기 소속 한국인 근로자들이 총격을 당해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는 뉴스에 온 국민은 경악했다.

불과 이틀 전 아버지 김만수(46)씨를 이라크로 떠나 보낸 영진(19ㆍ충남여고 3)양은 그러나 꿈에도 생각지 못 하고 곧 발표될 수능 성적만을 걱정하며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라크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설마 아빠는 아니겠지…” 이튿날 새벽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잠에서 깬 영진이는 곧 이어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를 접해야 했다. “영진아, 아빠가 돌아가셨데. 우리 이제 어떡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영진 양은 출국 직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은 아빠의 사진을 보며 어머니,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그러나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사흘이 지나도록 정부 관계자 어느 누구도 전화 한 통을 해주지 않았다. 공식 사망통보도 받지 못한 마당에 위로 전화를 기대했던 것은 사치였다. 뒤늦게 외교통상부 장관이 보내온 조화를 영진 양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부숴 버렸다.

“우리 아빠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우리나라가 파병을 한다고 해서 이라크인들이 죄 없는 우리 아빠를 죽였습니다. 우리 아빠가 희생타가 됐습니다. 아빠를 살려내세요…” 참지 못한 영진 양은 3일 새벽,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라크 피해자 김만수씨의 딸 김영진입니다’란 제목의 편지를 써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국민의 생명에 무책임한 정부와 돈을 벌기 위해 근로자의 안전을 내팽개친 회사를 질타했다. 자신을 만나 억울함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영진 양에게 전자우편으로 답장을 보내 “대통령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영진 양 가족의 슬픔을 가슴 깊이 느끼며, 또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위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영진 양이 보기에는 (정부 대처가) 너무나 부족해 보였을지 모른다“며 “나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고, 앞으로도 계속 챙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피격 사망 사건으로 파병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대전 평화원 장례식장에는 연일 파병 반대론자들이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병에 반대하는 50여개 시민단체들은 유족들에게 장례를 ‘시민사회장’으로 치르자고 제의했다.

정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파병 방침에 변화는 없다고 거듭 밝혀둔 상태다. 분명한 사실은 제2, 제3의 영진 양 가족만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했으니까 저랑 좀 만나 달라”는 영진양의 소망이 외면된다면, “불쌍한 저희 아빠 어떡하느냐”는 간곡한 비원은 영원히 길을 잃고 만다.

대전=전성우 기자


입력시간 : 2003-12-09 13:49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