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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새해엔 터놓고 도움을 청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생 개띠다. 주간한국이 신년기획으로 준비한 새해 운세(정경대 국제의명연구원 이사장 제공)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운세는 ‘속전속결하는 기질 때문에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빈곤을 위장하면 더 해로우므로 터놓고 도움을 구해 보라… 어려움을 극복하고….’라는 조언이다.(44페이지 참고)

얼 핏 그럴싸한 그의 운세가 2004 갑신년에 맞고 안맞고를 떠나 새해엔 노 대통령도 체통을 지켜 정치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국정에만 전념했으면 싶다. 누가 봐도 뻔한 진흙탕 싸움에 대통령이 사사건건 나서는 건 민생에 도움이 안된다. 한 발자국쯤 뒤로 물러나 정치판을 보면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새 정치’ ‘열린 정치’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년호부터 노 대통령에게 이런 주문을 내는 까닭은 시중에는 지금 ‘대통령은 이젠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행중인 대선자금 수사와 최대 정치 이벤트인 4월 총선 결과가 답변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노 대통령의 마음과 판단에 달린 것이다. 그런데 취임후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말중에서 어떤 게 진심이고, 어떤 게 그냥 해본 말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으니 답답하다.

‘대통령은 이젠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 속에 함축된 뜻은 ‘정말 물러나려고 하는 것일까’다. 평생 집사라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검은 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을 때 노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한 뒤부터 걸핏하면 ‘그만둔다’고 하니 의문을 가질 만하다. 너무 잦다 보니 정말 그만둘 의향인지, 그냥 해보는 소리인지, 협박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의 말씀’에 천만금보다 더한 무게를 두는 서민들은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보다 10분의1이 넘으면 정계은퇴하겠다’(4당대표와의 회동)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책임한 의혹 부풀리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고 해명(기자회견)하니 헷갈릴 수밖에.

한마디로 불법자금을 수백억씩 받은 한나라당이 물귀신 작전을 펴니 그걸 막기 위해 좀 심하게 표현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그걸로 끝날 일이지, 왜 또 “실제로 그렇게 되면 재신임 절차 없이 (정계은퇴) 약속을 지킨다”고 하는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속전속결하는 기질 탓인가? 또 하루이틀을 못 참고 “대선자금은 (합법 불법) 다 합쳐 350억에서 400억 미만”(강원도 지역인사와 간담회)이라고 내지른다. 노무현 후보측이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금액은 274억원이니 76억~126억원의 돈이 공중에 뜬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그만둘 의향을 갖고 있다면 한나라당 불법자금이 760억~1,260억원이 안되면 그만둬야 할 판이다.

그러나 청와대 대변인은 즉각 “350억~400억원 속에는 작년 대선기간에 합법적으로 지출한 정당활동비용 81억원도 포함돼 있다”며 “불법자금 규모를 76억~126억원으로 해석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양혜왕은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자 맹자가 말했다. “전쟁터에서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런데 50보를 도망친 병사가 100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다면 전하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100걸음이 아닌 것뿐이지 도망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오십보백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대목이다. 양혜왕처럼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웃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불법자금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은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그것의 10분의 1, 그러니까 수십억원은 괜찮다는 논리는 소도 웃을 말장난이다. 새로운 정치를 한번 펴보라고 뽑아놓았더니 이렇듯 말장난이나 하고 있으니 서민들이 ‘대통령은 이젠 어떻게 되느냐’고 궁금하지 않겠는가?

노 대통령의 말에 대해서는 대선 TV 토론 때부터 이런 저런 뒷말이 많았다. 취임 후에 더욱 심해졌으나 사람들은 대통령이 자신의 속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내보이는 방법이려니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흘러 국민도 알만큼 알고, 그 깊은 속내도 다 짐작하고 있다.

만약에 상대로부터 버림을 받기 전에 미리 떠나겠다고 은근히 협박해서 몇 번이나 의중을 떠봐야 하는 심리적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깔려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직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고湧犬?다름없다. 대통령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 하는 진짜 이유가 된다. 그러니 ‘빈곤(도덕성)을 위장하면 더 해로우므로 터놓고 도움을 구해 보라.’ 국민은 대통령을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3-12-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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