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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기강 확립 방식 달라져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설 연휴에 고향에서 만난 하위직 공무원 김모씨는 노무현 정부가 지난 1년간 공무원 조직을 다루는 걸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고 혀를 찼다. 말단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눈칫밥을 먹어 청와대니 외교부니 하는 높은 곳의 일은 잘 모르지만 돌아가는 세상 물정에는 훤하다고 했다. 그가 노 정부 핵심 인사들에게 던진 충고는 대충 이랬다. “공무원 사회의 기강을 잡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꽉 잡든지 하지, 한 1년 한껏 풀어 놓았다가 갑자기 잡으려고 드니 반발만 초래한다. 지금이라도 공무원 조직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확고한 스탠스를 정해야 남은 4년이 편할 것이다.”

그의 쓴소리가 새삼스러운 건 없다. 최근 외교부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 사태를 지켜보면서 ‘어차피 저렇게 될 걸, 왜 지금까지 탈(脫) 권위에 토론 문화 활성화’ 운운했는지 의아했다. 지금 외교부 사태의 전말을 따져 징계 조치의 타당성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공무원 기강 확립을 내세워 역대 정권 초기 이상으로 공무원 조직을 후려 치는데 따르는 값비싼 후유증을 우려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기강 확립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공무원 비리 척결 의지가 도를 넘는 바람에 공무원 조직 일부는 몸을 사리는 정도를 넘어 섰다. 암행감찰 방식에 반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수차례 방영된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TV 장면에 분개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감찰 요원들은 처신이 의심스런 공무원에게는 몸수색까지 했는데, 예전에는 꼼짝 못하던 하위직 공무원 사이에서 이제는 “몸수색을 하려면 영장을 갖고 와라”고 대드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몇백억씩 먹고도 멀쩡한데, 우리는 왜 모욕적인 몸수색까지 당해야 하느냐는 반발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게 정부의 기강 확립 조치에 대한 저항 형태로 나타난다는 게 꺼림칙하다. 민원 부서의 비리가 척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영장을 갖고 오라는 식으로 따지고 든다면 암행 감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무원 조직 특유의 몸사리기도 전에 없이 심해졌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의 강력한 사정 여파로 유행한 복지부동(伏地不動)은 이제 복지안동(伏地眼動), 낚지부동의 단계를 거쳐 아예 눈 막고, 귀 막고, 입 다물어야 한다는 ‘3불(不)’론까지 나도는 판이다. 고위직 공무원 사회엔 3불론이, 하위직엔 감찰에 대한 저항 기류가 확산된다면 국가를 지탱하는 모세혈관인 공무원 조직은 없는 게 오히려 나을 지도 모른다.

공무원 조직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1차적인 책임은 노 정권의 핵심인사들에게 있다.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초기에 강도 높은 사정을 통해 지난 정권의 비리를 척결하고 공무원 조직의 기강을 다잡는 게 통례였다. 그래서 정권 초기엔 누구나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보신에 급급했다.

참여정부 들어 그런 관행이 깨졌다. 탈 권위한다며 공무원 사회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서기 보다는 되려 헐겁게 풀어주었다. 장관이 자주 바뀌는 게 좋지 않다며 국정 혼선을 불러 일으킨 일부 장관마저 감싸고 돈 노 대통령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려는 노 대통령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탈 권위가 급격히, 또 혁명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켜야 할 권력의 마지막 권위마저 추락했고, 그것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풍조로 이어진 것이다. 이 상태에서 한 여경이 사석에서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유언비어를 얘기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좌천되고, 외교관들이 공ㆍ사석에서 외교 정책과 대통령을 비방했다고 징계 대상에 올랐으니 “ 탈 권위도 기분 나쁘면 노(No)”라는 비아냥을 듣기 마련이다.

공직 기강 차원에서 북미국 사태는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할 만하다. 다만 기강 확립에 나서려면 공무원 조직을 풀어놓은 지난 1년을 반성한 뒤 확실한 스탠스를 잡고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들은 재수가 없어서 당했다는 억울한 감정을 갖게 된다. “반미(反美)면 어떠냐”고 했던 노대통령이 “미국 아니었으면 내가 북한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 하니 대통령의 외교 노선에 대한 외교관들의 시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참여 정부에 걸맞는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고 해 놓고서는 대통령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공무원을 향해 “대통령의 국정 철학도 모르고 딴소리 한다”고 책망하면 그 자체가 우습게 된다. 노 대통령은 토론을 거쳐 방향이 정해진 뒤 다른 소리를 하면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지만, 방향이 정해졌募?것 만큼 모호한 게 없다.

권력의 무거운 권위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공무원의 기강 해이를 다잡으려면 역대 정권과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 조직이 바로 선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1-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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