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말은 아끼고 행동은 느리게


북핵 및 2차 6자 회담을 앞둔 국제적 긴장 속에서는 말을 아끼는 게 좋다. 지도자들의 순행(巡行)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에 있은 국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절제된 발언을 했다. “그 지역(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국가들과 함께 우리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제거할 것을 요구 하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약속을 지키고 핵무기를 개발하지 말 것을 요구 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가장 위험한 무기들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갖지 못하도록 전념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국정연설에서는 북한을 ‘악의 축’, 2003년에는 ‘무법정권’이라 했다. 수정주의 국제정치 역사학자와 주미(朱美), 비미(批美)의 국내학자는 “‘위험정권’은 바로 미국이다”고 말하지만 그의 올해 국정연설은 도전, 도발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도 30일 베이징에서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제2차 6자회담 개최시기 문제를 논의했다. 두 사람은 “2월 중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16일)행사가 있고, 3월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대만총통선거가 있는 만큼 2월 하순에 회담이 열리는 게 적절하다”고 합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타결을 위한 이런 절제있는 언동은 어디서 왔을까.

조선중앙통신은 1월 10일자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존 루이스 교수(안보 및 협력 연구센터 소장, 87년 이후 9차례 방북), 알라모스 국립핵연구소 핵커 전 소장 일행이 6~10일간 영변 핵시설을 ‘특례적’으로 돌아보았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그들이 참관하도록 한 것은 우리의 핵 활동과 관련한 억측성 보도들과 모호성이 당면한 핵 문제 해결에 지장을 주고 있으므로 미국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현실을 확인할 기회를 주어 투명성을 보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대표단이 떠난 1월 11일자에 조선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해 첫 순행을 보도했다. 이례적으로 첫 방문을 군 부대가 아닌 건설 중에 있는 식품가공 공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이전에는 이런 순행보도에서 날짜와 장소를 보도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2002년부터 시작된 시장경제, 개방ㆍ개혁 정책에 나서고 있는 북한의 오늘을 상징하는 면이 짙다.

김 위원장은 이 공장이 기초식품, 부식물, 양곡 가공까지 가능하다는데 만족한 듯 말했다. “공장을 통이 크고 전망성있게 설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건설물의 질도 최상의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자랑찬 결과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고,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우리 건설자들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

그는 또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아들답게 잊지 않고 말했다. 이 공장은 “후방사업(국방건설이 아닌 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란 수령의 교시에 따라 세운 것이다”고.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절제발언은 그럼 어떤 곳에서 영향을 받았을까.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전 베이징ㆍ도교 특파원, 천안문 보도로 1990년 퓰리쳐상 수상)은 10일자 ‘북한에 대한 바람직한 생각’이란 칼럼에서 부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올해에는 어떻게 언동해야 할 것인가를 시사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시대 개막 후의 정세를 취재키 위해 12월말 베이징에 간 그는 연변까지 가 탈북자들을 통해 오늘의 북한을 살폈다. 그가 만나본 26세의 정 모 여인은 말했다. “인민들은 김일성, 김정일을 아직도 숭배한다. 앞으로 10년 간은 김정일 정권은 계속 될 것이다. 또 다른 김 모여인은 “북한에는 소요나 봉기가 없다”고 했다. 62세의 허모씨는 “대부분 북한 사람들은 반미적이다. 김정일이 미국에 대항할 것으로 믿기에 이들은 굶으면서도 그를 따른다.”

그러나 탈북한 후에야 이들은 북한 지도자들이 바깥세상을 잘못 가르친 것을 알고 번민 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서서히 변할 때는 김 위원장의 장기집권은 어렵다고 봤다. 북한에서 세계식량계획 대표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인 릭 콜시노는 그의 3년간 체북 경험을 토로했다. “북한은 번창해가는 분위기다. 길에 차는 부쩍 늘었다. 옛날 보다 색깔있는 옷이 많이 띈다. 전기도 밝아졌고 상점도, 식당도 많아졌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북한의 여러 곳을 둘러 봤지만 붕괴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프는 결론 짓고 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보상을 주저하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옳다. 북한이 핫케익을 구워내듯이 핵무기를 제조해내는 동안 수수방관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며 조기붕괴의 믿습?재고하라고 권고 했다.

1987년 러시아가 붕괴하기 직전부터 북한을 직접 찾은 존 루이스 교수도 크리스토프와 같은 의견이다. 그는 이번 방문에서 북한쪽으로부터 2002년 10월의 북한 농축 우라늄 개발문제는 당시 방북한 국무부 팀이 북한의 뜻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결론 내리고 있다. “최근의 움직임은 희망적이다. 북한은 최소한의 애매성이나 모호성에서 벗어나려 이번 참관을 허용했다. 조그마한 희망이 커질 가능성은 높다.”

희망이 꽃피려면 부시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은 말을 아끼고 행동은 느리게 해야 한다.

입력시간 : 2004-02-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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