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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노무현 대통령의 물형관상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3선 개헌의 길을 열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표범상이다. 러시아식 인물평으로는 차갑고 음습한 ‘회색 추기경’형이지만 동양식 물형관상(物形觀相 사람의 얼굴에서 동물의 형상을 간파하는 관상법)으로는 표범을 닮았다는 말이다.

물형관상학 입문서 ‘천하가 이 손 안에 있소이다’(명지사)의 저자인 최문재씨에 따르면 권력을 잡을 만한 인물의 물상은 대개 봉황상 용상 호상 표범상 순이란다. 이성계는 무학대사로부터 “그대는 봉황의 형상이니 필시 나라를 세울 것이오”라는 말을 들었고, 도선대사는 변방 장사치의 아들 왕건을 보고 “용의 얼굴에 호랑이 턱을 지녔으니 보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연했다. 또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용상이다.

표범상의 특징은 얼굴이 둥글고, 날카로운 눈매에 야무진 입매를 갖고 있다. 성격은 호상을 닮아 시원시원하고 대범하다. 또 용맹하고 공격적이며 강한 의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대권을 쥔 푸틴의 지난 4년을 되돌아 보면, 신기하게도 표범상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잡힌다. 크지 않는 체격이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대범한 결단력은 주위를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다. 병약한 옐친 시대의 7~8년 혼란을 손쉽게 수습한 것도, 체첸 테러전과 올리가르히(재벌)와의 전쟁을 밀어붙이는 과감함도 표범상의 전형이다. 1인 독재로 흐른다는 비판마저 힘으로 제압하는 야성을 지녔다. 그 결과는 70% 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고, 12월 총선에서 80년 공산당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냈다. 총선에서 친여 정당의 의석수를 절반 정도에서 3분의2 이상으로 크게 늘린 푸틴은 이제 재선, 3선을 향해 내달릴 참이다. 서방측에서 푸틴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여론을 조작해 승리를 일궜다고 비판하지만, 조작된(?) 여론만큼 표를 얻었으니 조작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푸틴식 총선 승리를 향해 ‘올인’ 전략을 펴는 노무현 대통령의 물상은 어떤 형일까? 난세에 진가를 발휘하는 표범상은 최소한 아닌 듯하다. 일단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타입이 아니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가고, 막히면 주춤하고 기회가 생겼다 싶으면 다시 대쉬하는 스타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현직 장·차관들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대거 언론에 ‘징발’ 대상으로 거론되자 노 대통령은 “출마는 당사자들의 뜻에 따른다”고 비껴갔고,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중을 타진하자 ‘장관직을 충실히 수행해 달라’며 출마를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시중에 많지 않다. 소위 3김 시대의 ‘깃발’보다 더 신통하다는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에게 뒤지면 장관의 뜻대로, 경쟁력이 있으면 청와대의 뜻대로 한다는 설이 파다하다. 김화중 장관의 출마 만류도 현지 여론조사에서 승산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러다보니 장ㆍ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은 허둥지둥한다. 출마를 결심한 인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인사도 여론조사 결과에, 또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있다. 새해 들어 한달여가 지났건만 여전히 관가가 어수선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가 급등에다 환율 하락, 소비심리 경색 등으로 가중되는 경제 불안을 해소해야 할 재경부의 경우 장ㆍ차관 모두 출마설이 나돌면서 직원들이 덩달아 일손을 놓은 상태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총선에 나갈 경우 경제수장이 선거에 차출되는 네 번째 케이스로, 의원 한 석 때문에 아직도 경제수장이 징발되는 나라는 한국 말고 없을 것이라고 비판도 나온다.

장관의 출마설이 나돌면 국정에 공백이 생기기 십상이다. 참여정부 최고의 스타 장관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조차 최근 경찰 간부들의 워크숍 자리에서 “(장관에) 와서 얼마 안된 뒤부터 출마설에 너무 시달려 검찰 조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장관이 총선에 나가네 마네 하니까 조직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아마 모든 장관의 심정을 솔직하게 대변한 것일 게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ㆍ차관의 출마설이 나돌고, 당사자들이 눈치만 보는 것은 참여정부가 기존의 낡은 정치를 깨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눈치를 보는 장ㆍ차관에 대해 과감히 ‘감투’를 벗겨줘 총선에 출마하든 뜻을 접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는 게 옳다. 자칫하면 참여정부의 ‘코드인사’가 총선에 나갈 인물에 대한 커리어 관리쯤으로 전락하고, 나아가 노 대통령의 총선 전략으로 폄하될 우려도 있다.

재작년 대선에 이어 4ㆍ15 총선은 3김 정치의 잔재를 털어낼 수 있는 기회다. 세대교체든 공천파괴든 여당이 먼저 낡은 정치의 틀을 깨야 한다. 그것은 정도를 걸으면서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가능하다.힘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푸틴의 물상이 부럽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2-0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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