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할리우드는 없었다


지난 7일 오전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연 배우인 장동건과 원빈의 무대인사가 예정된 종로3가의 서울극장 앞. 기자는 차라리 당황스러웠다.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뤘던 매표 행렬은 11시께가 되자, 그야말로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메워졌다. 카메라를 들고 열광하는 중년층 앞에 오히려 10대들이 머쓱할 정도였다. 플래카드까지 준비해 단체로 대한해협을 건너 온 수십 명의 일본 여성 팬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서툰 한국말로 연신 “ 태극기, 장동건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오후 12시20분. 스태프진과 배우들을 태운 흰색 밴 차량이 광장에 들어서자 1,000여명의 관객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 열기는 저녁 7시30분 코엑스 메가박스에서는 더 뜨거웠다.

부산의 8개, 대구의 7개 극장, 포항 등 배우의 무대 인사가 계획된 지방 상영관 역시 모든 티켓이 동난 상태. 여기에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암거래까지 가세해 평균 7,000원인 티켓 가격은 액면가의 10배인 7만원까지 치솟고 있었다.

이틀전인 지난 5일 전국 4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 태극기…’는 여지껏 ‘실미도’가 갖고 있던 개봉 첫 날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보기 좋게 깨트렸다고 한다. ‘실미도’도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 세계를 주름잡던 할리우드 영화들이 한국 영화 개봉을 피해 눈치를 보며 극장을 잡을 것 같은 분위기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과 북파 공작부대 사건을 그려낸 두 영화의 인기 경쟁이 한국 영화의 최대 부흥기와 어떻게 직결될 지, 개봉 당일의 열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본 기자는 자못 궁금하다.

최규성 사진부 차장


입력시간 : 2004-02-10 15:07


최규성 사진부 차장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