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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접으며] 한국영화 '부익부 빈익빈'


충무로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1919년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이래 85살을 맞은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문화 중흥기다. 영화 ‘실미도’는 2월 19일 마침내 ‘1,000만 관객’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개봉 58일 만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개봉 13일(2월 17일) 만에 500만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두 대작은 연일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3일 ‘태극기…’ 시사회장에 들어섰을 때,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이었다. 안성기 설경구 등 ‘실미도’의 주역들은 경쟁작인 ‘태극기…’의 예고된 ‘대박’을 지켜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인들은 자신의 출연 여부를 떠나, 하나로 뭉친 채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이제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공통된 소감이었다.

자신감이 과한 것은 아니었다. 잇단 대박 영화의 탄생은 영화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불을 붙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실미도’의 1,000만 관객에 따른 경제 효과는 3,000~4,000억원. 이에 따라 문화 산업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데에 우리은행 등 보수적인 은행권이 뛰어 든 것은 물론, 영화사 등 문화사업 관련주들도 연일 상승세다.

그런데 1,000만 시대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대작 영화들의 독식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런 대작 영화들이 작은 영화가 설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현재 ‘실미도’는 전국 220개, ‘태극기…’는 513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전체 1,271개 스크린의 60% 가량을 독식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영화계에서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쏠림’ 현상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 생산이 이뤄지지 못해 마침내는 애써 일으킨 영화 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영화계 전반의 성숙이 무르익기 전에, 기록이 앞서 나간 탓이다. 기록 경신에 흥분하다가, 돌아서서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 꼴이다.

성급하게 터뜨린 샴페인 거품에 허우적댄 아픔을 우린 이미 1990년대 경제를 통해 익히 경험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기록들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쏠림과 독식이라는 썩은 가지들을 쳐 내면 대박 나무는 더 자랄 것이니.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2-2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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