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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간접적 자기제시 효과


“아빠, 이달부터 학원을 하나 끊고, 인터넷 (사이버) 강좌를 몇 과목 듣게 컴퓨터 좀 구해 줘.”

고3 수험생이 되는 둘째 애가 2월 초에 느닷없이 인터넷 강좌를 신청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지난해 수능시험에 유명 사이버 강사가 제시한 지문이 언어 영역에서 출제됐다는 사실이 이미 보도됐으니 순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원을 진짜 그만 두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마음 한구석에서 솟아오르는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역시 고3 수험생을 둔 부모로서, 최근의 교육 정책을 되짚어보자는 뜻에서다. 한해에 대략 67만명에 이르는 수험생의 부모들은 누구나 낭떠러지 위에서 외줄을 타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낸다. 그 기분은 올해 대학에 들어간 큰 애를 통해 느낄 만큼 느낀 터다. 사교육비가 주는 돈의 공포도 경험했고, “누구는 몇백만원짜리 과외를 시키고 있는데…”라는 소리에 참담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다시 1년을 보낼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차에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을 내 놨다. 교육방송과 인터넷 강의를 통해 수능 과외를 실시하고,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 수준별 보충학습을 허용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정보화 시대에 교육당국이 앞장서 수준 높은 사이버 학습 체제를 구축하고, 누구든지 부족한 부분을 과외로 보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또 서울 강남 지역에 살지 않는 학생들이 유명 학원에서 족집게 강의를 듣듯이 할 수 있다면 많은 부모들이 절망감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스타 강사를 초빙해 교육 방송의 질을 더욱 높인다면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는 일단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책에 크게 관심이 없다. 인터넷을 이용해 과외 공부를 하든 방과 후에 족집게 학원 강사를 불러 학교에서 과외를 하든 관심 밖이다. 이건 이제 중3생이 되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챙겨야 할 사항이다. 고3 수험생 부모는 지난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7차 교육 과정이 올해 처음으로 수능에 적용되는 만큼, 그것이 우리 아이 대학 입시에 어떻게 작용할까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처럼 교육 문제, 특히 대학 입시는 모든 국민의 관심 사항이긴 하지만 직접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을 경우 연예인 누드 스캔들보다도 눈길을 끌지 못한다. 또 대학 입시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가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갖고 있으며 수험생 67만명의 부모는 철저하게 자신의 아이에게 유리한 방식만을 고집하는, 아주 이기주의적인 주제다. 그러니 한 개인의 생각은 수험생 전체인 67만분의 1, 아니 부모들까지 합쳐 수백만분의 1의 의견이나 경험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 대학입시 문제는 하느님이 내려와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농담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식의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대책도 목소리 큰 일부 세력의 주장에 의해 누더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좀 엉뚱하지만 교육 정책을 아예 거꾸로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까지는 정책을 발표한 뒤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다듬어나갔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문제점은 그냥 두고 새로운 정책의 좋은 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자는 뜻이다. 이번에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사이버 과외 방식을 보자. 분명히 강점이 있다. 그 강점을 살리자는 것이다. 예컨대 앞으로 3~4년간 방송한 내용, 혹은 지문을 실제로 2008학년도 수능 시험에 몇 문제 출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둘째 애처럼 학원을 끊고 사이버 강좌를 듣겠다는 아이들이 속출할 것이다.

문제는 수능이 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쏟아지는 비판에 교육부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어차피 7차 교육과정은 올해 처음 시험대에 오르고, 그 결과는 11월이면 나온다. 비판도 쏟아질 것이다.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당초 계획처럼 2008학년도 입시제도를 일관되게 가져가고, 사이버 강좌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 효과를 기대해도 좋다. 이 효과를 바탕으로 다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자는 제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살디니가 조사를 했다. 풋볼 경기에서 이긴 학교의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됐니” 하고 물었더니 “우리가 이겼다”고 응답한 학생이 36%였는데, 패한 학교의 학생들은 18%만이 “우리가 졌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걔들 또 졌어요”라며 마치 남의 이야길 하듯 하더라는 것이다. 뭔가 가치 있고, 좋은 것은 자신과 결부시켜 공유하려는 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간접적 자기 제시’라고 한다. 말끝마다 灼?출신의 저명 인사를 들먹이고, 자신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심리다. 우리 교육에서 이런 심리는 지금까지 강남 학원, 족집게 강의, 고액 과외 등으로 발휘됐다. 이것을 사이버 강좌로 옮기기만 하면 대학 입시의 많은 부작용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2-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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