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추다르크의 행진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지난 28일 선대위원장직을 전격 수락했다. 이로써 분당 위기로 치닫던 민주당 내분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바로 한달 전인 2월28일 추 의원은 개혁에 지지부진한 당을 향해 “노란 점퍼를 입었다고 개혁하는 게 아니다”며 ‘개혁 원조’ 민주당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했다. 그날 오후 시내 모처에서 조순형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 당 개혁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달 전 당 개혁의 핵심은 공천 혁명, 즉 물갈이였다. 그 대상엔 호남 중진들도 포함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외면했다. 오히려 호남 중진 중심의 당권파가 당을 장악, 공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나왔다. 자기사람 챙기기가 횡행하면서 유능한 인사들이 발길을 돌리거나 당에 들어왔다가 쪽박을 차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추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가 당의 장래를 우려해 당권파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와중에 터진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내부 모순을 희석시키면서 당권파의 입지만 강화시켜줬다.

얼마 후 터진 탄핵 정국은 민주당을 그로키 상태로 몰아넣었다. 탄핵이 조 대표에 의해 주도되긴 했지만, 그 이면엔 당 지지율 급락에 따른 위기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당권파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추 의원도 처음엔 탄핵에 반대 내지 주저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보고 찬성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탄핵 후폭풍으로 민주당은 나락으로, ‘조(趙)-추(秋)의 전쟁’으로 비유되는 당권파와 소장파 간의 힘겨루기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민주당호의 침몰은 불문가지였다. 마지막 순간에 추 의원이 한발 물러나면서 분당 위기는 넘겼지만 앞으로 항해가 순조로울 지는 미지수다. 내상이 워낙 심한 데다 외풍 또한 살벌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전당대회 때만 해도 추 의원은 ‘추다르크’란 별칭을 얻었다. 당의 수호자로, 노 대통령이 인정한 ‘차기 주자’로 그녀의 행로는 장미빛 일색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가시밭길.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추 의원은 ‘사즉생’(死卽生)의 선택을 했다.

세탁소집 딸로 ‘국수’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강단 있는 법조인이란 평가 덕에 정계에 입문한 추 의원에게 ‘봄은 왔으되 봄을 느끼지 못하는 듯’(春來不似春)하다. 4월이 추 의원에게 ‘잔인한 달’이 될 지, 아니면 진정한 봄의 향기를 전해 줄 지 알 수 없다. 삭막한 시대에 ‘추 다르크’의 행진이 계속되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30 19:3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