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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바보야! 이제는 일자리 만들기야!"


“저녁에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니까 늦을 거야.”

갓 대학에 들어간 딸 아이가 지난 주말 집을 나서며 던지는 말꼬리를 잡아 돌려세웠다.

“거기, 오늘은 살벌하다던데…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막을 거고, 가서 다치기나 하면 어떡할려고…”

“그러니까 선배들이 모두 나오래. 지난번에는 가수 신해철도 나오고, 장난이 아니었대. 월드컵 때도 (공부 땜에) 못 가봤잖아. 한번 가 봐야지.”

“글쎄, 가지 말라는 건 아니고, 제대로 알고 가야지. 전 국민이 즐기는 축제도 아니고, 애닯은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도 아니고, 정치적인 자린데….”

“거기가 바로 현실 정치래. 아빠도 옛날엔 민주화 해야 한다며 데모했을 거잖아.”

“그때는 군사정권의 독재를 끝내기 위해 반정부 시위를 한 거고, 지금은 누굴 반대하는 거야? 시위는 권력에 맞서는 대중의 유일한 무기인데, 탄핵은 권력이 아니잖아? 국회도 문을 닫았고.결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인데, 그건 친정부 시위잖아. 이 세상에 친정부 시위하는 곳은 독재국가밖에 없어. 우리나라가 아직도 독재국가냐, 친정부 시위하게.”

대통령 탄핵 이후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느꼈던 혼란의 실체를 잠시나마 딸 아이와의 대화에서 되짚어볼 수 있었다. 70~80년대 민주화 시위의 참여자들이 광화문 촛불시위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몸을 던지지 못하는 심적 갈등 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려다. 그 세대가 그토록 제한하고자 했던 권력을 대통령에게 돌려주려는 철없는 젊은 감성세대에 대한 반감이고, 나중에 또 대통령이 어떤 혁명적(?) 언행으로 혼란을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탄핵 사태후 달라진 민심에 벌써부터 은연중에 오만함을 내비치는 정부 여당 아닌가?

솔직히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가 ‘대통령 구하기’ 시위를 한다니, 해외에서 보면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국회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을 살리자는 뜻이니, 밖으로는 혹 관제 데모로 비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광화문 집회를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불법집회로 규정했지만 딸애는 광화문으로 갔고,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도 광화문으로 향한다. 거대한 촛불로 뒤덮인 광화문 일대를 TV로 보면 마치 마법의 불처럼, 불황에 지친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특정 정당이, 선배들이 참석을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날리고, 버스를 동원하고, TV에 나와 집회 참가를 부추긴다 해도 십수만 군중을 모은 흡인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 밑바닥에 우리 사회, 우리 민족 특유의 이중 심리가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 대범한 척하면서도 눈물 앞에서 찡~ 해지는 감성,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리 앞에 굳이 명분을 내세우는 이중적 심리 등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분명 잘못했지만(사과해야 여론 60%), 대통령을 눈물 흘리게 만든 국회(탄핵 반대 70%)는 더 나쁘다 식의 이중적 심리구조 앞에서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30%)도, 국정운영의 시비도,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도, 대북 노선 논란도 다 묻혀졌다.

또 IMF 위기 때보다 더 살림살이가 괴롭다는 가정이나 직장을 못 구한 젊은이들은 정권 비판 쪽에 서는 게 이성적이다. 경제 파탄의 기본 책임은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 정국에선 국정운영에 제한적으로 참여가 가능한 야당이 모두 잘못한 탓이란다. ‘국회가 정치 싸움에 매달린 탓’이라는 주장이 먹혀든 것인데, 이는 심정적으로 약자(대통령) 편을 든 결과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 지지도가 탄핵 후 갑자기 치솟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대통령이다. 1970~80년대 우리가 가두시위에 나선 것도 대통령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헌법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힘있는 국회에, 힘있는 기득권에, 힘있는 다수에 포위된 연약한 대통령이라고 애처롭게 호소한다. 지난 1년간 국정 혼선에다 잦은 말 실수로 비판을 받을 때도 모두 힘있는 언론 때문이라고 했다. 합법적으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감성주의를 재빠르게 이용해 군중심리에 덧칠한 자가 대세를 휘어잡는다는 사실이다. 살인을 범할 수 없는 개인이 모여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군중심리의 위력이다. 군중심리는 개개인의 심리의 산술적 평균이 아니라, 집단의 크기에 따라 증폭된다. 그 군중심리가 쨋瓚貫璨【?1차로 폭발한 뒤 거대한 집회로 나타나는 우리 특유의 현상을 면밀히 살펴볼 때가 된 것이다.

촛불시위 민심이 4ㆍ15 총선에 어떻게 반영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모두가 감성에 젖어 있기 보다는 경제를 생각해야 할 때다. ‘바보야! 이제는 일자리 만들기야!” 이런 구호를 이번 총선에서 듣고 싶다.

입력시간 : 2004-04-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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