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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총선 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재작년 대선을 전후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 최도술 여택수씨와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 등 4명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노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노 대통령에게 안희정 최도술 여택수씨는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오늘에 이른 그림자 같은 존재다. 취임 후 처음으로 노 대통령의 “눈앞이 캄캄해진” 것도 이들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날 때였다.

헌재가 세 사람을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채택했을 때 노 대통령은 또 다시 눈앞이 캄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탄핵반대 여론이 들끓고, 4ㆍ15 총선 여론조사가 ‘친노’쪽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측근 비리가 다시 부각되는 사태 진전은 그에게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당초 국회가 탄핵의 큰 줄기로 삼았던 선거법 위반은 사소한 것으로 결말이 나올지라도 측근 비리는 역대 정권의 교훈에서 보듯 대통령의 권위와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탄핵 여부를 심판하는 자리에서 거론된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뒤가 켕기는 일이다.

단순한 개인비리로 끝날 측근 비리도 적지 않지만,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희정씨는 대선과정에서 삼성 채권 30억원을 비롯해 롯데·태광실업 등에서 총 6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최도술씨는 SK 10억원 등 20억원 안팎의 불법자금을, 여택수씨는 썬앤문 문병욱 회장에게서 현금 3,000만원 등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제30조(정치자금 부정수수죄) 제1항에 따르면 선거사무장 등이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를 범해 징역형 또는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때 그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로 한다고 돼 있다. 불법자금 수수는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물론 대선 후보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을 직접 지시하거나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이상 탄핵 사유마저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지금까지는 우세하다.

하지만 4ㆍ15 총선을 거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선거법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해졌고, 국민의 법의식도 높아졌다. 이번 선거가 역대 어느 총선보다 조용하고 깨끗하게 치러지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무려 50여명에 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중에는 후보자 본인 외에 배우자나 선거사무장 등 주변 인물의 불법 행위가 선거법상 연좌제의 적용을 받아 당선 무효에 이를 수 있는 경우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과거와는 달리 후보자가 주변인물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무한 관리 책임을 지는 것이다. 비록 노 대통령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지는 않더라도 탄핵심판 과정에서 정치 도의적 책임은 물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셈이다.

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했으나 의회의 탄핵으로 4월6일 파면된 롤란다스 팍사스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측근들이 받은 불법대선자금이 결정적 흠집이었다. 불법 대선자금 수수, 국가비밀 누설, 측근 비리 등 탄핵 사유 세 가지 중 핵심은 역시 대선 후 대통령궁에 함께 들어간 핵심인물들이 대선 당시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된 사업가 보리소프씨로부터 120만 리타스(약 4억6,000만원)의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팍사스(대통령)가 나를 병신 취급했으니, 그는 이제 죽은 거나 다름 없다…" 는 보리소프씨의 전화통화 내용이 방송에 폭로되기도 했으니 리투아니아 국민 감정은 능히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팍사스 대통령은 “구세력의 음모”라며 보리소프씨가 마피아와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해명하며 사과했다. 실수는 인정하지만 이것이 탄핵받을 정도의 범죄냐고 항변했다. 탄핵 심판 과정에서 그의 지지도가 20% 포인트 이상 올라가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2001년 가을 동료 두명과 함께 수도 빌뉴스의 빌리아강 다리 밑을 비행기로 통과하는 곡예비행 등으로 인기를 모은 ‘곡예사 대통령’의 한계였다.

노 대통령 측근에 대한 헌재의 증인 심문이 시작되고, 언론이 이를 집중 보도하면 대선 불법 자금 수수는 새삼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팍사스 대통령의 경우처럼 충격적인 전화통화 내용이 폭로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달라진 정치적 지형을 감안할 때 민심이 흔들릴 소지도 있다.

그렇다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다. 모든 혐의는 엄격한 조사와 해석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수준으로 진행돼야 한다. 탄핵반대 여론이 높았다고 해서, 4ㆍ15 총선이 열린우리당의 승리로 끝났다고 해서, 기왕에 시작된 대통령 탄핵이란 법치주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또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은 대단히 중요하다.

클린?전 미국 대통령의 측근 조지 스테파노폴로스는 정치 자서전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클린턴은 비록 창피를 당하고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시켰지만, 직권을 이용해서 탄핵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칭찬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힘은 이런 대통령과 측근에게서 나온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4-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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