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남북한의 답답한 콤플렉스


중국에서 건너 온 텁텁한 황사가 눈앞을 가리고, 답답한 북한 뉴스가 귀를 후벼 판다. 엊그제 보고 들은 북한 뉴스가 알고 보니 틀린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오늘 보도 역시 내일이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끝물로 접어 든 4월은 황당하기만 하다.

느닷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았다. 18일 밤이었다.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서울에 알려졌을 때 그를 태운 특별 열차는 이미 국경을 넘어 중국 단둥(丹東)을 통과한 뒤였다고 한다. 그날 밤 ‘김정일 전격 중국 방문’을 신문의 1면 톱으로 올려놓고 ‘혹시 오보는 아닐까’ 가슴 졸인 건 그의 방중이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진 탓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북한 내부 사정에 깜깜하다는 증거다.

19일자 신문에서 쓴 ‘전격’이란 말은 의전을 중시하는 외교무대에서는 상식에 어긋난다. 정상급 회담에서는 더욱 그렇다. 북중 정상회담 준비 사실을 우리가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그것도 18일 저녁엔 첩보 수준이었다. 베이징에서, 서울에서 단둥으로 전화가 쇄도했지만 손에 쥔 소식은 “오늘 낮부터 시내와 기차역 주변의 경비가 보통 때보다 훨씬 강화됐다”는 정도다. 서울에서는 이곳 저곳에 확인 전화를 넣은 뒤 ‘오보’ 위험을 무릅쓰고 보도한다. 결과는 한국 언론의 대특종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가 ‘한국 기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언론인이 아니면 주도면밀하게 정보를 제공받는 사람들’이라고 비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 언론들이 김 위원장의 방문에 관해 전혀 보도하지 않고 중국 당국자도 이를 확인해주지 않지만’(뉴옥 타임스) 유독 한국 언론만 김 위원장의 일정을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써내려 간다. 용천역 대규모 폭발 사건의 초창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용천역 사건은 그렇다 치고, 언론을 철저하게 따돌린 김 위원장의 행방을 한국 기자들은 어떻게 그토록 잘 쫓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한국의 대북 콤플렉스에서 찾을 수 있다. 언론이든, 정부든 북한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먼저 알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다. 남북 정상회담도 한 마당에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도 됐건만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경험으로 말하면 북한 기사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잘 다루면 대특종이고, 자칫하면 오보다. 또 1면 톱으로 ‘물을 먹을지’ 모르니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1년에 쓸만한 기사가 한 꼭지 나올까 말까 하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97년 8월 장승길 북한대사의 망명을 한국 언론이 가장 먼저 포착했다. 작년 12월에는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씨가 중국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북한 대사관의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우리 특파원들을 뉴욕 타임스가 따라올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정보원은 역시 우리 공관원들이다. 김정일의 방중을 최종 확인해준 곳도 그들이다. 남북한에 대해 등거리를 유지하는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 정보는 북한측에, 북한 정보는 한국측에 귀띔해 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 범위를 넘어 더 깊숙이 들어갔다간 망신을 당한다. 98년 한ㆍ러 외교분쟁을 일으킨 조모 참사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ㆍ러 외교분쟁을 일으킬 만큼 예민하게 반응했던 러시아는 더 이상 북한의 폐쇄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때(2001년) 모스크바 정상회담 일정까지 미리 배포했다.

모스크바에서 글라스노스트(언론개방)를 경험했건만 북한은 여전히 보안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모스크바의 예를 따라 김 위원장의 방중도 사전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결국 빗나간 것은 바뀌지 않는 북한의 보안 의식 때문이라고 본다. 수행원의 휴대폰까지 빼았었다고 하니, 그 철저함을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보도 통제가 가능한 중국의 체제도 일조를 했다. 평양주재 이타르타스 통신 특파원과는 달리 중국 신화통신 특파원을 통해서는 북한 사정에 관해 전화 취재를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북한이 용천 참사 이후 보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징후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사흘만에 현장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긴 하나 긍정적인 신호다. 짐작컨데, 김 위원장이 현장을 방문한 뒤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현장 개방을 지시했을 것이다. 그의 결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용천 참사가 북한의 개방을 앞당기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고육책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는 고무적이다. 의약품과 구호품, 지원 인력의 빠른 수송을 위해 항로는 물론 육로를 열거나, 부상자 치료를 위해 남측 병원을 이용한다면, 북한이 보안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덩달아 우리도 북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 2004-04-28 21:46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