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경제 민주화'가 나라를 잡는다?


헌법재판소에 다시 국민의 이목이 집중될 판국이다. 헌법상의 ‘ 경제 민주화’ 개념이 분열과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불씨의 근원, 헌법 119조 2항이다.

재계의 싱크 탱크,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이 개정을 요구,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1986년 ‘ 민주화의 봄’ 이후 18년 만에, ‘ 경제 민주화’란 테마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좌 원장은 정부 정책의 방향이 ‘ 성장’과 ‘ 분배’의 갈림길 앞에서 요동치 듯 흔들릴 때마다 ‘ 경제 민주화’를 화두를 던지며 헌법 개정을 요구해 왔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다소 특별해 보인다.

좌 원장이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 주제 강연에 참석, 이를 먼저 요구하고 나서 정치권의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되기 때문이다. 좌원장의 헌법 개정 요구 발언은 최근 정부와 여권이 시장 규제론을 두고 강력 제기한 볼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좌 원장은 5월 29일 “ 시장주의는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 이라면서 “ 경제민주화란 경제를 평등 사상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한국 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탈피해야 하는 이념” 이라고 톤을 높였다. 좌 원장은 또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평등주의를 표방한 관치 개혁’ 때문이라며 비판의 끈을 죄었다. ‘ 균형 성장’과 ‘ 경제력 집중 규제’ 등의 규정이 이후 각종 관치적 평등 조치의 근거 조항으로 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 “ ‘ 평등주의의 덫’에 빠진 채 기업가들의 의욕을 꺾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나아가 각종 졸속 정책의 씨앗이라는 일침이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룬다. 정부가 민주화라는 전가의 보도로 “ 감 놔라 배 놔라”식으로 기업에 사사건건 개입하다 보니, 결국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개념에 대한 해석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서로 엇갈리고 있는 양상은 교육 평준화 찬반론의 재탕을 보는 것만 같다. 답답한 여름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6-01 14:25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