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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코리아 리콜?


최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랜저’는 1980년대 초 현대차가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 제휴해 들여 온 모델이다. 일본에선 실패한 모델이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국내에선 ‘VIP’용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그랜저 XG의 경우, 미국에서도 평가를 받을 정도로 브랜드 가치가 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유럽에선 현대차의 인기 준 중형차와 흡사한 미쓰비시 차가 인기를 끌었다. 우리에겐 소위 ‘미니 그랜저’ 모델이다. 미쓰비시 차는 한마디로 우리의 자동차 산업을 키워 준 모태나 다름 없다.

승용차 생산 88년 역사의 미쓰비시 차가 최근 치명적인 차량 결함을 고의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활의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92년 이후 생산한 17개 주력 차종에서 구조상 결함이 발견됐는데도 회사 차원에서 이를 은폐해오다 발각된 것이다. 결함 부위가 엔진의 실린더와 배터리, 브레이크, 에어백 등 모두 26곳에 이른다니 놀랍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자체 조사를 통해 결함을 확인한 회사측이 소비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차량 정기점검 때 ‘끼워 넣기 식’으로 수리토록 지시했다는 사실이다. 일본 대기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심각한 ‘모랄 헤저드’(도덕적 해이)다. “돈 몇 푼 아끼려고 양심을 판 악덕 행위”이라는 비판이 언론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80년대만 해도 도요타, 혼다, 닛산과 경쟁하며 세계시장에 진출한 미쓰비시 차의 몰락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직접 분사 방식의 디젤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등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과시했던 미쓰비시 아니었던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미쓰비시 차 역시 일본 최고의 재벌인 미쓰비시 그룹 안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점과 자동차 리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첨단 기계ㆍ전자 부품이 장착되는 자동차의 특성상, 이젠 어떤 고급 자동차도 리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최근 전자식 브레이크 보조장치의 결함으로 독일에서 생산된 중형 세단인 E클래스와 2인승 스포츠카인 로드스터 SL모델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기로 했다. 미쓰비시와 벤츠의 차이는 역시 리콜에 대한 인식과 기준이다. 지금껏 벤츠의 최고급 명성을 이어 온 비결은 리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자세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리콜제도가 1992년 9월부터 시작됐다. 93년에 1개 차종, 8,254대에 불과했던 리콜이 2003년 말에는 47개 차종, 108만7,291대로 늘었다. 10년 사이에 13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를 자동차의 품질이 나빠진 것으로 해석하면 오해다. 수요자와 생산자의 의식이 10년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까닭이다.

자동차 뿐만이 아니다. LG전자는 최근 잇달아 폭발 사고를 일으킨 압력밥솥에 대해 보상금 5만원까지 지급하면서 리콜을 진행 중이다. 내부의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해 밥솥이 폭발하거나 갑작스럽게 뚜껑이 열리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특히 위험하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2001년 6월 공개 리콜을 발표했던 압력밥솥 일부 모델에 대한 리콜을 최근 재개한 것도 그런 이유다.

리콜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리콜 해당 제품을 전부 불량품으로 취급한다면 업체로서는 이를 은폐하려는 유혹에 빠져들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리콜은 기본적으로 리콜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고, 리콜 요구는 소비자의 권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여전히 현실적이다. ‘다른 제품은 리콜도 안하는데…’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체는 이런 소비자의 눈높이와 기업의 양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는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양심을 팔다 보면 미쓰비시 차처럼 한순간에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양날의 칼과 같은 리콜의 경제학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엊그제 “ 현재의 경제 위기는 감당 못할 위기가 아니며 상당 부분 과장됐다”고 말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경제참모들도 위기론에 회의를 표시했다. 우리 경제가 위기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위기의 기준이다. 경제 지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지표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체감 위기는 달라진다. 소비자는 내수부진이나 극심한 실업난 등 제 문제점으로 위기를 논하는데, 정부가 우리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IMF 환란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콜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수록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듯이 경제 현상을 검증하는 정부의 태도도 그래야 하지 아닐까 싶다.

억지로 눈을 감는다면 ‘알고도 은폐한’ 미쓰비시 자 경영진이나 다를 바 없다. 예컨대 위기의식을 갖고 대처했다면 6% 성장도 가능했을 텐데, 5% 성장을 이룩해 놓고 ‘보라, 위기는 없었다’식으로 둘러댄다면 그것은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다. 미쓰비시 차가 서둘러 리콜을 선언했다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 2004-06-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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