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0일 (현지시간)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 묘역에 묻혔다. ‘위대한 대화자’, ‘위대한 설득자’, ‘미국의 영웅’이란 찬사를 들은 그는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오래 살았고(향년 93세), 가장 늦은 나이(71세)에 대통령이 됐다. 그는 손수 연설문을 쓰고 다듬고 이야기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명연설가로 평가됐다.

그가 죽은 6월 5일은 60년 전 노르망디 ‘D-Day’ 가 이루어진 날이다. 그는 1984년 6월 6일 40주년을 맞아 미 1 사단 특공대가 이틀 간의 전투에서 220명 대원 중 겨우 90명만 사상을 입지 않은 프왕드 옥 절벽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했다. “노르망디의 군인들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 인류를 위해 싸운다는 신념, 이 전장의 해변에 하느님이 은총을 내릴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해방을 위한 힘의 사용은 정복을 위한 힘쓰기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깊은 인식 속에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의 목적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명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의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윌버른 중령(101공정사단 506연대 3대대장)은 전투 낙하 전날에 대원들에게 무릎 꿇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조아리지 말고 하느님을 쳐다볼 수 있도록 고개를 들어 ‘우리가 하려는 일을 축복’해 줄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레이건의 이 연설은 다음해에 있은 고르바초프와의 미소 정상회담 1년 전에 행한 것으로 전쟁 보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념 깊은 연설로 평가된다. 레이건은 소련을 협박하지 않았고, 대결 보다는 평화를 찾을 것임을 약속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며 멸망의 대상으로 여겼던 이들을 놀라게 했다.

고르바초프는 6월 7일자 뉴욕타임스 조문 기고에서 “그는 경청할 줄 아는 대통령”이라고 썼다. 그는 85년 제네바 회의에서 미ㆍ소의 핵동결과 소위 ‘스타 워즈’로 불리는 ‘선제적 방어 전략’을 미국이 실험 단계까지만 추진하겠다는 합의를 끌어낸 것은 레이건의 ‘경청’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물론 우파적 인물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그의 신념을 독단적(dogmatic) 방법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그는 협상과 협조를 촉구했다. 무엇보다 미국인이 이런 그를 믿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1998년 모스크바에 온 그는 기자들 질문에 명확히 답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보지 않는다고.”

“나와 레이건의 시절은 대화가 필요한 때였다.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도전적이고 복잡한 것이더라도 대화는 끝내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어야 했다. 그 후의 만남에서도 우리는 이런 믿음이 후대의 지도자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이런 레이건의 ‘경청’에 비해 ‘D-Day’의 상대편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반대 방향에 있었다. 60년 전 6월 16일. 히틀러는 서부전선 총사령관인 룬트슈테트, 노르망디 방면 총사령관인 롬멜, 두 원수의 초청으로 프랑스의 비밀총독관저에 왔다.

룬트슈테트는 “10일간의 상황으로 보아 현재 병력으로는 연합군을 내몰지 못한다. 여러 전선에서 군대를 후퇴시키고, 유동적이고 독립적인 전투로 구할 수 있는 것은 구해야 한다”고 건의 했다. 이에 대해 “어떤 회피도, 조정도 없다. 단지 그 자리에서 사수 하거나 죽는 것 뿐이다”고 히틀러는 주장했다.

‘사막의 여우’, ‘탱크 전술의 신’인 롬멜은 룬트슈테트를 도와 엄청난 정치적 제안을 했다. “연합국과 협상을 해 서부 전선에서는 휴전을 하고 소련과 동부에서 대결하자”는 것이었다.

“단독 강화는 서부 연합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계약으로 독일제국은 멸망할 수도 있다. 독일 국민들도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광신적인 방어전쟁에 달려 있다”라고 히틀러는 대답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이 전쟁을 종결시키려 하느냐?”는 롬멜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자네의 책임 소관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일이다.”

룬트슈테트는 해임됐고, 롬멜에게는 10월 12일 히틀러 암살 및 쿠테타 주모자로 자살이란 비밀 명령이 내려졌다. 롬멜은 그의 일기장에 적었다. “국가의 기본태도는 정의여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저 위의 지도자는 깨끗하지 못하다. 학살행위는 범죄이다.’

입력시간 : 2004-06-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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